마 20:20-28/세상을 거스르는 공동체
160619 전교우 연합예배 (1-2부)
상한 과일을 사는 교인들
창원침례교회 문기태 목사님이란 분의 예화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과일가게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를 다니는 교인 중 한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와서 전도를 했는데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그는 시큰둥하게 답하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교인이 가면서 사과를 좀 사가는데 다른 고객들과 달리 별로 크지도 않고 여기저기 멍이 든 것만 골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 손님. 왜 그런 걸 골라가세요. 멀쩡한 놈으로 고르세요.’라고 했더니 ‘멍 든 놈들은 잘 안 팔리잖아요. 괜찮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 교인은 와서 계속 시원찮은 과일만 사갔습니다. 얼마 후 다른 고객들도 몇 사람이 왔는데 희안하게 그런 과일만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인이 물어봤습니다. ‘손님도 저 교회 다니세요?’ ‘네.’하고는 빙그레 웃더랍니다. 아마 같은 구역의 교인들이 그 사람을 전도하자고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후 그 상인은 그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세상의 가치와 반대되는 삶을 보여줄 때입니다. 모두가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데 그 반대로 행동하는 교인들의 모습이 한 사람의 마음을 열어 교회로 인도한 것입니다. 오늘 세상이 교회에서 보기를 원하는 모습 그리고 주님이 당신의 자녀들의 공동체에서 보기를 원하는 모습이 무엇일까요? 바로 세상의 가치를 거스르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좇는 모습입니다.
세상을 좇는 제자들
오늘 본문은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다툼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4절을 보면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가 났습니다.
(마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해 분히 여기거늘
왜 화가 난 것일까요? 그것은 야고보와 요한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마 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바로 이것이 모든 갈등의 뿌리에 있는 원인입니다. 남들보다 높아지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리까지 오르려 했던 에덴동산의 죄악을 생각해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만 문제일까요? 다른 열 제자들은 왜 그들에게 화가 났을까요?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청탁은 자신이 먼저 예수님께 했었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마 야고보와 요한처럼 제자공동체를 따라다니며 음식을 대접하며 경비를 지원해주었던 부유한 어머니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청탁을 한 두 제자나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난 열 제자나 모두 남보다 자신이 더 높아지고 싶어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서 하듯 남들보다 높아지려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안수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야 대접받는다고 생각하고 목사는 총회장이나 노회장을 해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원망이 생기고 시험에 든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툼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세상을 좇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좇으면 세상보다 더 추하고 흉합니다. 동네 건달이 막말을 하는 것은 원래 저런 사람이려니 합니다. 대통령 후보가 막말을 하면 기가막히고 황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높아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면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원래 다들 그렇게 사니까요. 그러나 교회가 세상과 똑같이 높아지려고만 하면 실망스럽고 답답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버려질 뿐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오늘 한국교회, 한인교회의 모습이 이 맛을 잃은 소금의 꼴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세상의 존경은 고사하고 비난과 조롱 앞에 서 있지 않습니까?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답을 주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주님을 좇는 교회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세상과 달리 제자들은 섬기는 종이 되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세상에서는 수위가 아니라 회장이 되어야 높아지지만 교회에서는 장로가 아니라 가장 궂은 일을 하는 일꾼이라야 높아집니다. 세상에서는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되어야 부유하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많은 헌금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한 헌금을 하는 자가 가장 부유한 자가 됩니다. 세상에서는 무지랭이가 아니라 박사가 되어야 대접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많이 아는 이보다 많이 실천하는 이가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물론 있습니다. 예수님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그들이 어떻게 살든지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몫이 없는 이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 나라를 사느냐, 세상을 사느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교회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삽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마 20:28)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섬기려 오셨고 희생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가장 높은 자리로 올리셨습니다. 빌 2장을 보십시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이 당신을 낮추시자 하나님은 주님을 높이셨습니다. 주님이 죽으시자 하나님은 주님을 살리셨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비우자 하나님은 생명과 영광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교회 안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야 어떻게 하든 참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모델을 본받아 살아갑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모델을 좇아 살아가시는지요? 세상의 모델입니까, 주님의 모델입니까? 주님을 본받아 섬김의 종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