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6 양자의 행복 / 롬8:12~17

20160626 양자의 행복 / 롬8:12~17

롬 8:12-17/양자의 행복

160626 주일설교

 

양자된 성도

몇 년 전 둘째 사랑이 때문에 오클랜드의 프리스쿨을 한 곳 방문했는데 교사인 백인 할머니가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인도 없는 동네에서 어떻게 한국말을 아느냐고 했더니 손녀가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라 그 아이를 위해 가족들이 다 간단한 한국말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에게 감동하는 때가 가끔 있는데 그 날이 그랬습니다. 혈연에 대한 집착이 강한 한국인들에 비하면 미국인들은 다른 혈통에 대한 입양에 많이 열려있는 듯 합니다.

안젤리나 졸리라는 영화배우는 6명의 아이 중 3명인 매독스, 자일로 그리고 팍스는 각각 캄보디아와 에티오피아, 베트남에서 입양한 고아들입니다. 안젤리나 졸리 때문에 한 때 미국에서 입양신청이 급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한인가정에도 입양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입양이라는 아름다운 일이 한인들의 가정에서도 많이 있기를 축복드립니다.

제 3세계의 고아원의 형편은 정말 열악합니다. 올 여름에도 방문하는 선교지 아이티에도 원장과 교사 한두 사람이 허름한 집에서 수십 명의 고아들을 돌보는 곳이 흔합니다. 거의가 후원에 의지하는 곳이라 평소에도 아이들은 잘 먹지 못 하지만 후원이 끊어지면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곳도 많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과 복지는 상상하기 힘든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살던 아이가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선진국의 행복한 가정에 입양된다면 얼마나 큰 행복을 누리겠습니까! 미국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행복한 헐리우드 스타 가정에 입양된 매독스와 자일로 그리고 팍스가 누리게 된 복을 같은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부러워할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배를 곪고 잠이 든 친구였는데 이제는 한국 목사도 그 이름을 아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이 행복을 상상해 보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을 때 누리는 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이들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기 때문에 누리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안젤리나 졸리에게 입양된 고아들의 인생조차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복입니다. 차례로 살펴 보겠습니다.

 

아빠라고 부른다(15-16)

하나님께 입양된 성도의 첫째 복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전에 우리는 죄의 종노릇하며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범죄자가 경찰을 무서워하듯 하나님을 무서워했습니다. 아무리 신을 따르며 선하게 살려고 애를 써도 기껏해야 신의 종일 뿐입니다. 종은 아무리 잘 해도 종입니다. 주인 앞에 엎드릴지언정 주인 품에 안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빠는 아람어로는 아바라고 하는데, 발은이 거의 같지요,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가장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사용하셨던 표현이며 이제 모든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자녀가 된 것을 증언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최근에 평화가 엘리멘트리를 졸업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다 셀폰을 가지고 있다면 노래를 부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 셀폰! No! 자기 전에 아빠, 셀폰! No! 밥 먹을 때도 아빠, 셀폰! I said No! 그러면 멈출까요? 아니요, 볼 때마다 조릅니다. 누구라서 가능한 겁니까? 아빠니까요! 평화 성격에 학교선생님이나 옆집 아저씨였다면 단 한 번만 No 소리를 들어도 두 번 다시 조르지 못 했을 겁니다. 아빠니까 쉴 새 없이 조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지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저에게 졸랐다면 예의가 없다고 싫어했을 겁니다. 아들이니까 매번 No소리를 하면서도 그 조르는 것을 다 들어줍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실갱이를 하면 아들이 이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저같이 강팍한 인간도 아들에게 지는데 하나님이 자녀들의 기도에 져주시는 것을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을 우리는 아버지로 두고 아빠라고 친밀하게 부릅니다. 모든 죄가 씻김받고 깨끗하고 두려움없는 사랑으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뢰고 때로는 조르고 또 조르며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이 없습니다. 평화와 기쁨을 누립니다. 이런 복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가르침과 돌봄을 받는다(12-14)

하나님께 입양된 성도의 두 번째 복은 성령님의 자비로운 인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빚졌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죄와 악의 학대와 착취를 받으며 굶주리던 고아같던 우리를 풍요롭고 행복한 하나님의 가정에 입양시켜 주셨으니 얼마나 큰 빚을 진 것입니까? 그러므로 더 이상 고아처럼 욕하고 속이고 싸우며 살지 않아야 합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3절입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육신을 좇아가면 안 됩니다. 교만과 이기심으로 특징되는 육신적 삶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육신을 좇아가 망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사랑의 빚을 진 자의 삶의 방식은 영을 좇는 것입니다. 영을 좇는 만큼 육을 좇지 않게 되기 때문에 영을 좇는 것은 곧 육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영을 좇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14절입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자비로운 아버지와 스승과 주로써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진리를 깨닫고 기뻐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죄를 이기게 하시고 의를 사모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느낍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이렇게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자비로운 인도를 받는 것이 양자된 자들의 복입니다. 날마다 이런 인도를 경험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유산을 상속한다(17-18)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입양된 성도의 복은 생명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것입니다. 17절 전반부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고대 로마법부터 현대법에 이르기까지 양자는 친자와 똑같은 상속의 권리를 갖습니다. 가망없는 죄인이었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김을 받아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 나라의 모든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부활의 새 몸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스리는 권리를 상속받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요! 할렐루야! 날마다 이 은혜를 찬송하시길 축복합니다.

이 상속에는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17절 후반부입니다.

(롬 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2002년 월드컵에서 온 국민이 4강 신화의 기쁨을 누렸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과 영광을 누린 이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운동장에서 코가 깨지고 다리에 쥐가 나고 구르며 싸운 태극전사들이 아닙니까? 고난에 참여한 이들일수록 더 큰 영광과 기쁨을 누립니다.

이 때 고난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운동자에서 뛰기는 했으나 열심히 뛰지 않고 슬렁슬렁 뛰어서 팀을 위기에 빠뜨린 선수가 있다면 그는 영광 대신 비난과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만났을 때 지레 포기하고는 원망과 절망과 비탄으로 보내버린다면 고난 끝에 오는 영광을 맛볼 수 없습니다. 고난 중에도 승리를 믿고 인내와 믿음과 용기로 이겨낼 때에야 비로소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성도에게는 고난조차도 영광을 예약하는 축복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고 성령님의 자비로운 인도를 받으며 천국의 삶을 상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양자된 우리 성도들의 복이라면 세상에 이처럼 수지맞는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런 복을 누리는 인생만큼 대박난 이들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런 복을 날마다 누리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