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43-45/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20160724 주일설교
해방을 주신다
제가 군대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으로 복학한 때였습니다. 하루는 자취방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군대 고참에게 구타를 당한 생각이 났습니다. 그 고참은 저를 30분 동안 부동자세로 세워놓고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를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아직 군대에 구타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때였습니다. 그 생각이 나자 갑자기 저의 마음은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이 맹렬한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며 그 고참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고 있노라니 한 5분도 안 되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저는 주님께 저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에 그 고참을 긍휼히 여기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그 고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자 정말 그 역시 폭력과 악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그를 위해 기도하고나자 제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후로는 그가 생각이 나면 분노 대신 긍휼의 마음과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 날의 기도는 저의 마음을 저 자신을 파괴하는 분노와 복수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첫 번째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악인과 선인을 모두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 분 안에는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평화도 기쁨도 거룩함도 없습니다. 우리가 복수심을 버리고 원수를 사랑할 때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이 회복됩니다. 어떻게 하면 복수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스데반은 우리에게 그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6장과 7장을 보십시오.
(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이 가득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를 돌로 치는 자들을 향해 복수심을 품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진정한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을 원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원수를 위해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원수마저 긍휼히 여기게 되고 복수심에서 해방되어 참된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을 누리시게 될 줄 믿습니다.
회개케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악한 이를 회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20 이하를 보십시오.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는다는 표현을 학자들은 두 가지로 해석하는데 그 첫째 해석은 그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서민의 집에서는 요리를 위해 불씨를 담은 화로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끔 불씨를 꺼뜨리면 이웃집에 가서 불씨를 얻어옵니다. 그 때 불씨를 답은 화로를 머리에 이고 오면 그 열기로 인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우리가 악에게 져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면 그 선의 능력으로 원수가 자신의 악을 깨닫고 얼굴이 화끈거림 즉 부끄러움을 느끼고 회개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면 그를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음성 나환자촌 사역 이야기를 담은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책에 김요석 목사에 관한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김목사의 교회에 출석하는 이웃 마을 양집사가 하루는 새벽녁에 깁목사집 방문을 마구 두드리더랍니다. 아니, 이른 새벽부터 무슨 일이오? 아, 목사님, 제 이야기 좀 들어보셔요. 제가 키우는 돼지 다섯 마리가 어제 우리 밖으로 도망가서 이웃집 김씨네 채소밭에 들어가 채소를 좀 뜯어먹었습니다. 그런데요? 그래서 제가 김씨에게 채소값을 물어주겠다고 했더니, 아 김씨 말이 채소값으로는 안 되니 그 돼지 다섯 마리를 모두 내놓으라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 있고 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습니까? 그 동안 교회 다니다고 제가 매번 참아 왔는데 더 이상은 못 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님? 김요석 목사가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말하기를, 집사님, 아마도 기독교인이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돼지가 아깝지만 달라는 대로 줘버리십시오. 네? 그 돼지 값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목사가 편을 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왔던 양집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해가 지난 어느 날 새벽 또 다시 양집사가 김목사의 방문을 마구 두드립니다. 또 무슨 일이오? 할렐루야! 목사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아, 목사님. 작년에 제가 목사님댁에 새벽에 와서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지요? 그 때 제가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여 돼지 다섯 마리를 줘버리지 않았겠습니까? 아, 잘 하셨네요. 그런데요? 할렐루야, 어제 그 김씨네 소 두 마리가 우리 채소밭을 다 뜯어먹어버렸습니다. 돼지 다섯 마리 주고 소 두 마리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집사님, 그 소를 뺏을 생각이십니까? 아, 당연히 받아야지요. 저도 돼지를 몽땅 주지 않았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런다고 믿는 우리들이 똑같이 하면 어떡합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이번에도 양씨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또 양집사가 김목사의 방문을 부서져라 두드렸습니다. 할렐루야, 목사님. 하나님은 진짜 살아 계십니다. 어제 목사님 말씀 듣고 김씨에게 찾아갔습니다. 김씨, 걱정하지 말게. 채소값 얼마나 한다고 소를 받겠나. 잊어버리게, 나는 벌써 잊었네. 그렇게 말해주고 왔습니다. 잘 하셨네요. 그런데요. 오늘 새벽에 김씨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보게, 양씨, 나는 자네 돼지를 빼앗았는데 자네는 왜 내 소를 빼앗지 않나? 내 부끄러워 밤새 한 숨도 못 잤네. 자, 여기 자네에게 뺏은 돼지가 새끼를 쳐서 50여 마리가 되었네. 모두 가져가게나. 목사님, 이건 받아도 되겠지요? 네, 잘 하셨습니다. 그 돼지야 원래 집사님 꺼니까 당연히 받으셔도 되지요. 그 일 이후 옆 마을에서는 모두 양씨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원수 사랑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표지이자 악인마저 회개시키는 능력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기를 시작하심으로 이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심판을 맡긴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마지막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숯불을 쌓는다는 로마서 12장의 말씀의 또 다른 해석은 그 숯불이 심판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악인을 선대하는 것은 그 심판의 숯불을 엎어서 그를 불로 심판할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분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 바로 앞 구절인 로마서 12:19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아무리 선으로 대해도 회개하지 않는 악인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런 이들이라 할지라도 심판을 우리 스스로가 행하려고 함으로써 악에게 속아 넘어가 또 다른 악의 일부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행하실 터이니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오직 선으로 행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마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마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평안을 누릴 집이든 심판을 받을 집이든 성도의 사명은 평안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평안을 못 누릴 악한 집은 심판을 받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런 집에 빈 평안은 오히려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니 성도가 손해볼 일은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공정하심과 심판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이런 믿음이 있을 때에라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함으로 악으로부터 해방되고 악인을 구원케 하며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자리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