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9:16-20:16/어떻게 구원을 받는가?(1)
최근 한 교우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로마서 큐티를 하던 중 고민이 되어서 질문을 해온 것인데요, ‘믿음과 행위가 한 세트로 결합되어야만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맞습니까?’ 다시 정리해보면 ‘구원을 받으려면 믿음과 행위가 온전하게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교우의 질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쯤은 던져왔던 그리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울에 의하면 행위로는 안 되고 오직 믿음으로만이 아니냐, 그런데 야고보는 행위가 없으면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하니 사실은 믿음과 행위가 결합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결국 행위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인데 과연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고 할 수 있느냐? 빙글빙글 제자리를 도는 듯 한 이 문제는 알 듯 하면서도 므로겠고 설교를 들으면 아는 것 같은데 돌아서면 또 헷갈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거칠게 도식화한 주요종교들의 입장을 한 번 보십시오.
종교 | 구원에 대한 입장 |
---|---|
유대교 | 행위로 |
카톨릭 | 믿음 + 행위로 |
개신교 | 믿음으로 |
유대교와 다른 종교들의 자력구원을 우리는 물론 믿지 않지만 개신교와 카톨릭의 구원관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해 2주에 걸쳐서 믿음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음 주는 삼일절 설교를 하고 그 다음 주에 이 주제에 관한 두 번째 설교를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찾아온 한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살펴 봅니다. 이 청년이 던지는 질문이 정확히 이 교우의 질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렇게 시작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잠깐 도표로 보십시오.
질문 | 예수님의 응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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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청년 | 뭘 해야 영생을 얻나요? | 계명을 지키라 |
부자 청년 | 다 지켰다면 된 건가요? | 안 된다. 소유를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
베드로 | 다 버리고 따랐는데요? | 상과 영생을 받지만 역전이 일어난다 |
부자 청년은 예수님에게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계명들을 지키라’고 답하시는데 그 부자 청년은 ‘모든 것을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 것이냐’고 재차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온전하려면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번째 요구에 부자 청년은 낙심하고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베드로가 그 부자 청년과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이 무엇을 얻게 될 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새 세상에서의 상과 영생을 약속하시는데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역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님이 영생의 길을 묻는 청년에게 왜 계명 지킬 것을 요구하셨을까요? 부자 청년이 그것을 다 지켰다고 한 후에도 그것으로 온전해지지 않는다고 하실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 답은 사도 바울의 다음의 선언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예수님이 계명 준수를 요구하신 것은 그것은 그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계명을 아무리 지켜도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대로 그 청년은 자신이 모든 계명을 다 지키면서도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예수님께 되물은 것입니다.
(마 19: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는 스스로 모든 계명을 지키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으로 자신이 온전해지지 못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기 원했고 그랬기 때문에 애초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 대화는 우리에게 인간의 어떤 선한 행위도 인간에게 구원받을 자격, 의로움을 주지 못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왜 부자 청년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까? 2주 후에 좀 더 자세히 이 문제를 다루겠습니다만,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은 당신을 믿으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나를 따르라 곧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요구는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낙심하고 돌아간 것은 나를 따르라 곧 믿음을 가지라는 요구가 그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행하기는 어렵지만 믿기는 쉽다는 오해를 합니다. 믿음을 마음 속의 동의와 인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금 이 곳에서 살펴보았듯이 믿음은 곧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 분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이전에 주인 노릇을 하던 돈이나 쾌락이나 자아를 내려놓는 것인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주제에 거의 가까이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지는 것조차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기를 실패하고 돌아간 것을 본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묻기를 자신들은 예수님의 요구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으니 무엇을 얻겠냐고 합니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었으니 구원을 받을 자격이 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큰 상과 영생을 받겠다고 약속을 하시고는 알 듯 모를 듯 수수께끼같은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길어서 오늘 읽지는 않았으나 본문 바로 뒤에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아침 9시에 온 일꾼이나 오후 4시에 온 일꾼이나 모두 부족함 없이 넉넉한 일당을 받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일꾼들이 그 포도원에서 일하게 된 것이 포도원에 일손이 부족해서이거나 그 일꾼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인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려는 포도원 주인의 긍휼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 훌륭하거나 인간의 의로운 존재이어서가 아니라 죄인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 긍휼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자 즉 나중 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먼저 된 자가 되고 이 긍휼을 모르고 자신의 훌륭하여 부름받은 줄 아는 즉 먼저 된 자는 그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 하게 되는 나중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역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행위가 인간의 공로가 될 수 없듯이 믿음도 공로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믿는 것 곧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것도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을 주셔서 믿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엡 2:8은 이렇게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엡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 믿음도 곧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율법을 지키는 대신 인간이 믿음을 가지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에게서 난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행위가 그러하듯 만약 믿음도 인간에게서 난 것이었다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을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선물 즉 은총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행위 즉 공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너는 믿음이 없구나! 어찌 그리 믿음이 없는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믿음을 자랑할 수 없고 남의 믿음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그가 가진 믿음도 그저 선물이니까요. 바로 여기서 우리는 23-26절의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부자 청년이 돌아가는 것을 보시고는 예수님이 1세기 유대인들의 관념으로는 가장 경건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인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무척 놀랍니다.
(마 20:25-26)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바로 이것이 답입니다! 앞선 교우의 ‘믿음과 행위가 결합되어야만 구원을 얻습니까?’라는 질문이나 부자 청년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라는 질문의 답은 ‘인간으로서는 무슨 선한 일을 하고 무슨 큰 믿음을 가져도 구원도 영생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아니, 인간이 주체가 되는 순간 무엇을 해도 안 된다, 심지어 믿음조차도 인간이 주체가 되어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그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주신 그 은총을 받은 이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들어보십시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행위를 대체하는 또 다른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앞서 보았던 도표를 완성시켜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질문 | 예수님의 응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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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청년 | 뭘 해야 영생을 얻나요? | 행위(인간의 공로)로는 안 된다 |
부자 청년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나를 따르라 (믿음을 가지라) |
베드로 | 따랐습니다(믿음을 가졌는데요?) | 상과 영생을 받지만 역전이 있다 (네 믿음도 은혜다) |
결론 |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가? |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된다! |
뭘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인간의 공로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을 가져라. 저 부자 청년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구원을 받겠지만 그 믿음도 네 공로는 아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구원의 길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택하여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에서 행하신 대속의 은총을 입게 된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총을 힘입어 성령님의 인도로 겸손히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된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모든 은총의 역사에 순종하는 인간의 반응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이지 인간의 또 다른 공로일 수 없습니다. 오로지 놀라운 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의 길을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