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8 세상에 충성하는 그리스도인 / 창 47:11~26

20190818 세상에 충성하는 그리스도인 / 창 47:11~26

창 47:11-26/세상에 충성하는 그리스도인

190818 주일설교
한인 이민사
지난 주에 교회창립 47주년, 광복 74주년을 기념했습니다만은 한인 이민사회는 한 가지 더 134주년을 기념할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주 한인이민사회의 탄생입니다. 지금부터 134년 전 갑신정변 직후인 1885년 유학생, 외교관, 상인 그리고 서재필 등 갑신정변에 실패한 정치인으로 구성된 50여 명의 조선인들이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는데 이 사건은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는 2차 이주는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조선인들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에서 떠나 하와이주 오아후섬에 도착한 것입니다. 당시 하와이 사탕수수 농당주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일본인 노동자들 대신 싼값의 노동력을 찾아 조선인들을 불러들이게 된 것이 그 계기입니다. 1905년까지 7,226명의 조선인들이 사탕수수 농장 근로자로 이주하였습니다. 이 때를 기준으로 하여 한인이민사를 116년으로 기념하기도 합니다. 
당시 하와이 노동자들 중 많은 이들이 노총각들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조선인처녀가 없으니 하릴없이 나이만 들어 신세를 한탄하며 농장에 안 나오고 술과 노름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자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일본인 노동자들처럼 고국에서 처녀를 데려와 결혼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자 사진 한 장만 달랑 보고 태평양을 건너오는 소위 사진결혼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배삯과 수속을 하는데 200불이 들었는데 한 달에 13불 받는 노동자들이 그 돈을 마련할 길이 없자 농장주들이 빌려주고 나중에 갚도록 하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 총각 때 사진만 보고 바다를 건너온 처녀들이 실물을 보고는 돌아가겠다며 배에서 안 내리고 울곤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민사는 어느 덧 100여 년이 훌쩍 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주 한인 이민사회는 2016년 기준으로 약 270만 명을 헤아립니다. 44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뉴욕/뉴저지/펜실베니아 인근은 LA 인근에 이어 미주 내에 두 번째로 많은 한인커뮤니티로 꼽힙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미국인으로 혹은 미국 거주자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남모르는 애환이 있습니다. 이민자의 애환을 논하자면 책 한두 권으로 끝나지 않을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8-90년대에는 미국 이민 간다고 하면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보았다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 한국경제가 크게 성장한 후에는 고국을 방문하면 미국 거지가 왔다며 왜 거기서 고생하느냐고 오히려 불쌍히 여긴다고 합니다. 아닌게아니라 요즘 한국을 방문하고 오는 교우들 말을 들으면 옷 입은 것 하며 먹고 즐기는 것을 보면 우리가 시골촌놈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주 뿐 아니라 중남미, 일본 등 규모가 큰 이민사회마다 역이민이 늘고 이민자 커뮤니티가 날로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민자도, 이민자 커뮤니티도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가나안 사람 요셉
사실상 성경은 전체가 이민자들의 역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이주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 후손들도 애굽으로, 앗수르로, 바벨론으로 그리고 세계 각지로 끊임없이 이주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 역시 고향 가나안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떠나서 애굽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요셉은 열일곱 즈음에 노예로 팔려갔으니 1.5세 쯤 될테고 그의 형제들은 장성한 후에 애굽으로 넘어왔으니 1세가 되겠습니다. 요셉의 초청이민으로 야곱의 온 가족이 다 건너온 셈입니다. 1세들은 자신들만 고생하고 1.5세나 2세들은 편하게 미국생활하는 것 같고 언어도 문화도 적응이 어렵지 않아서 좋겠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못할 고생으로 눈물의 나날을 보낸 이들이  1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으리란 생각입니다. 노예와 죄수로 청춘을 다 보내버린 요셉의 삶이 남이야기같지 않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그런 요셉의 삶에서 우리는 이민자의 삶의 마땅한 자세를 배웁니다. 요셉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요셉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가족들을 어떻게 돕는지 보십시오. 
(창 46: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 (창 46: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창 46:34) 당신들은 이르기를 …’ (창 47: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창 47: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그는 가족들이 애굽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바로를 만나게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라암셋이라는 좋은 땅에 정착하고 흉년을 견녀댈 양식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살고 애굽의 총리직까지 오르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가나안을 떠나온 셈족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언을 보면 그는 언젠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사람이란 자의식이 드러납니다.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는 평생 애굽에서 살았지만 결국 자신이 묻힐 곳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이니 유골이라도 매고 올라가서 가나안에 장사지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의 주검은 관에만 넣어두고 장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창 50: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뿌리를 아는 이민자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도록 만든 것, 수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모델 국가로 삼고 전 세계에서 이민을 희망하는 이들이 가장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영토나 자원도 한 몫 합니다만 그것만 따지자면 러시아, 캐나다, 중국, 브라질도 만만치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세계 어디서 왔든 그들의 열정과 재능과 헌신을 아낌없이 이 나라를 위해 쏟아놓으면 그들이 주인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고국에서는 인종과 성별과 신분과 출신과 학연과 지연과 기득권의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헌신해도 대가를 얻을 수 없었지만 이 나라에 오면 그 누구라도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고 헌신하고 수고하면 한만큼 정직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장점을 잃어버리고 미국도 다른 나라처럼 인종과 성별, 출신과 기득권으로 벽을 세우고 차별과 배제를 서슴치 않는다면 그 때부터 미국은 쇄락의 길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한인 이민자들도 남의 땅에 신세를 지는 이들이 아닙니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인종이 조화를 이루어사는 부강한 나라를 이루도록 이민자의 나라에 초청받은 이민자입니다. 과거에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같은 국가들의 모습을 the melting pot 즉 용광로라고 불렀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용광로같은 사회 안에 한데 어우러져 녹아서 동화되어 이루는 사회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보다 salad bowl 야채그릇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살아가지만 각각의 고유한 특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공존하는 사회라는 말입니다. 고유한 민족의 특질을 다 녹여서 잃어버리고 똑같아지기보다 고유성을 간직한 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럼으로써 더 다양하고 발전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민자들은 애써 자신의 출신이나 생활방식을 지우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공동체성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고유한 특질을 더욱 살리고 보존해 가는 것이 맞습니다. 즉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인사회 중심인 한인교회가 한글교육과 역사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한글과 한국사와 korean-american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성경이 괜히 그 긴 족보를 낱낱이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나라가 조상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려고 괜히 애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가 없는 사람들은 한 때 잘 먹고 잘 살아도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알지 못 하기에 그 성공이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뿌리 얕은 나무는 한 철 푸르고 말 뿐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라야 오래도록 푸르고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애굽에 충성하는 요셉
요셉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그가 가나안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가 딛고 살아가는 땅 애굽에 충성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창 47: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요셉은 7년의 흉년 동안 무너져내리는 애굽의 경제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지켜냅니다. 그리고 애굽의 토지법을 세우는데 오분의 일 20%의 소작세는 고대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대단히 너그러운 것입니다. 애굽의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그래서 애굽이 오래도록 번영하도록 하는 기초를 세웁니다. 가나안인 요셉은 그가 딛고 살아가는 땅 애굽을 위해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점은 오늘 한인이지만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미국에 충성하는 한인
우리 중에는 시민권자도 영주권자도 있고 일반체류자도 있습니다. 시민권자는 비록 태어난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지 않았다 할지라도 살아갈 조국으로 미국을 선택한 이들입니다. 시민권 선서를 한 이상 우리는 미국을 제 2의 조국으로 여기고 사랑하고 충성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까지 하시며 진실만을 말하라고 하셨는데 시민권자는 시민권 선서로서 맹세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맹세를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영주권자나 일반체류자라 할지라도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상 이 땅의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애정을 갖고 헌신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한인 2세들이 뿌리도 모른 채 자신들을 미국인인 줄 알며 자라는 것을 우리는 안타까워 하지만 반면 1세들은 뿌리만 붙들고 미국서 산지 수십 년이 되어도 물과 기름처럼 미국사회에 섞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2세들은 안타까워합니다. 우리가 태어난 조국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만큼이나 살아갈 조국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지않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혜택만 보려는 이방인이요, 배격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1992년 LA폭동으로 얻은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발단은 백인경찰들과 흑인 로드니 킹의 충돌이었는데 왜 LA한인타운이 흑인들의 표적이 되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까? 평소 한인들이 가진 태도에 흑인사회가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인들이 흑인타운에서 비지니스를 해서 돈을 벌면서도 정작 흑인들을 멸시하고 그 타운을 위해 아무런 기여도 하지않고 자신들은 부유한 타운에 가 산다는 것입니다. 폭동이 번지자 한인들이 총을 들고 타운을 지켜낸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폭동이 한인들이 미국사회를 향해 새로운 태도를 가지도록 각성시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인사회의 성숙은 많은 지역정치인들의 배출, 한인들의 지역사회활동 참여 등에서 드러납니다. 가까이는 팔팍시장이 우리 교회 성도이시고 다른 타운의 일꾼들도 여럿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한인들이 미국선거에 참여하고 정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언어와 문화의 벽이 있습니다만 어느 민족의 이민사에나 다같이 있는 어려움입니다. 다른 민족들이 그 벽을 넘어서 미국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면 우리 한민족이 극복하지 못 할 문제가 무엇입니까? 
최근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유대교 랍비와 나눈 대화를 읽었습니다. 랍비의 말이 한인들을 보면 예전 유대인들의 정착초기가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차별과 멸시 속에서 일주일 내내 밤늦게까지 힘겹게 일한 돈으로 자식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안식일이면 회당에 모여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그렇게 힘겹게 시작한 이민생활이지만 지금은 미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 중 하나로 주류사회에 자리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거둔 성공을 우리 한민족이 거두지 못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지어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서 온 백성도 아니요, 세계 10권의 경제대국이자 세계최고수준의 문화강국에서 온 이들이 아닙니까? 그런 부강한 나라를 일구어온 열정으로 이 땅 미국더 사랑하고 헌신한다면 다른 민족들이 한인들을 성공사례로 다큐멘타리를 만들며 본받고자 하는 날도 머잖아 오지 않을까요? BTS의 성공이 꿈만 같다면 이런 비전도 현실이 되는 것도 꿈만 같은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한국에서 이 곳 미국까지 인도하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 태어난 조국을 잊지않되 살아갈 조국을 사랑하며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