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1-11/흘러 넘치는 위로
200405 종려주일/코로나4
감옥에서 받은 위로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놀라운 평화가 믿음과 인내로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며 종려주일을 맞는 성도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일터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뉴저지에만 확진자가 2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오늘부터는 감염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라인예배도 평신도 섬김이들을 배제하고 교역자들만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두레교회를 섬길 때 담임목사이셨던 김진홍 목사님의 간증담을 자주 들었습니다. 1974년 겨울 김목사님은 암울했던 군부독재 하에서 정치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치범이라고 성경 외에 다른 책을 일절 넣어주지 않아 하루 종일 성경만 읽었습니다. 겨울이라 낮에도 추운데 밤에는 더더욱 뼈를 스미는 추위가 견디기가 힘들어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발가락은 동상에 걸려 퉁퉁 부어 아프고 간지럽기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너무 춥습니다, 하고 기도를 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성경에 나오는 불을 좀 찾아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떨기나무에 붙은 불, 엘리야의 갈멜산 꼭대기에서 내려온 불, 기드온의 300용사가 든 횃불, 예수님이 불과 성령으로 세례주실 것이라 세례 요한의 증언 그리고 오순절에 내린 성령의 불꽃 등을 읽는데 몸이 점점 훈훈해지더니 춥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 밤에 성령의 불이 임하셔서 마음만 뜨겁게 하신 것이 아니라 몸도 뜨겁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춥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감옥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자 어찌나 위로가 되고 감격스러운지 목이 터져라 손뼉치고 찬송하고 울며 기도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퉁퉁 부었던 발의 동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가장 힘든 시간에 함께 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몇날 며칠이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힘겨운 감옥생활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난을 거뜬히 이기게 하고도 남는 넉넉한 위로를 흘러넘치도록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경험하고 고백하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그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위로의 하나님
오늘 읽은 고린도후서는 3차 전도여행 중이던 사도 바울이 지금의 터키 서남부지방인 로마제국의 속주 아시아 지방의 주도 에베소에서 사역하며 에게해 건너편 지금의 그리스인 아가야 지방과 그 주도인 고린도시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시기는 55년 경으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지 25년 정도가 지난 후입니다. 바울이 머물고 있는 에베소교회와 이 편지를 받는 고린도교회 모두 혹독한 박해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황을 8-9절이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고후 1:8) 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리려고 합니다. 그 환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어낼 수 없으리만큼 심해서 마침내 우리는 살 희망조차 잃게 되었습니다. (고후 1:9) 그러나 이렇게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공동번역)
비난과 왕따, 폭행과 재산몰수, 고문과 투옥 등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관리와 대중들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것이지요. 그런 고난을 겪은 에베소의 바울과 그 일행이 역시 그런 고난을 겪고 있는 고린도와 아가야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 1:4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짧은 이 두 구절 안에 위로라는 단어가 4번이나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안에는 무려 10번이나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그럼 고난 중의 성도는 어떻게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까요? 그 첫걸음은 평소 의지하던 것에 대한 미련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시작됩니다. 9절입니다.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 쉽게말해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하고 생각할 정도가 되면 우리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깁니까? 믿음이 없는 이들은 절망하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남아있는 이들은 그 순간에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아, 내가 의지할 분이 하나님이었지, 이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는 것이지요. 건강하고 돈도 잘 벌리고 일이 잘 되고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을 때 어지간히 믿음있는 이들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 하고 자신을 의지합니다. 내가 마음먹으면 뭐든 되니 자기를 자랑하고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할 정도의 고난에 처하면 자신이 의지하던 것이 마치 들꽃처럼 부질없는 영광이요, 태양 앞의 촛불처럼 보잘 것 없는 자랑임을 깨닫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짜 나를 지키시고 구원할 분이심을 깨닫고 의지하게 되지요. 10절입니다.
(고후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이 감당하기 힘든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전세계가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꼽히는 초강대국 미국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요동치고 있습니까? 우리가 평소 믿었던 건강, 지식, 돈, 힘, 젊음이 얼마나 이 사태 앞에서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야 맙니까? 이런 고난을 겪기 전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수고와 재능으로 잘 사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진정 고난에서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고 앞으로도 건지실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가 성도들에게 흘러들어옵니다. 헛된 자랑을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러면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의 시선을 우리 자신에게서 돌려 하나님께로 향할 때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5절입니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고난이 무의미해보이는 우리의 고난에 의미를 드러내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죄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귀하고 값진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처럼 우리의 고난에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운이 나빠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또한 우리를 정결하고 겸손하게 만들어 그리스도를 닮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을 정금처럼 단련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고난당하는 이웃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셔서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뜻입니다. 외롭고 힘든 길을 갈 때 나 홀로 가지않고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우리보다 더 혹독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견디시고 믿음으로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로 인해 위로가 흘러넘칩니다.
앞서 김진홍 목사님이 겪으신 옥살이 중에 홀로 있지않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얻으셨는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겪으시는 이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만드는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또한 여러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심으로 놀라운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위로를 나눔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막혔던 혈관이 뚫려 생명의 피가 온 몸에 퍼지듯 성령님의 위로가 우리의 영혼에 흘러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위로가 넘쳐나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된 교회 구석구석 모든 성도들에게 퍼져갑니다. 성도들이 위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가 받은 위로를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위로가 배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위로를 받는 이가 위로를 경험할 뿐 아니라 위로를 주는 이도 위로를 경험합니다. 이것이 나눔의 원리입니다. 지식을 나누는 경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더 큰 이익을 누리는 이가 종종 학생이 아니라 교사입니다. 학생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지만 교사는 아는 것을 더 확실히 잘 알게 됩니다.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그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은 지식, 깊은 통찰, 다양한 경험을 누적하여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신참교사보다는 배테랑교사가, 신병보다는 배테랑군인이 더욱 뛰어나다 인정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눔의 원리를 통해 위로를 공동체 구석구석까지 퍼뜨리십니다. 6절입니다.
(고후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난을 겪는 이들이 자신이 고난을 극복할 뿐 아니라 형제, 자매, 이웃을 위로하고 도움으로써 그들도 고난을 견디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물론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그 때의 공동체를 붙드는 힘은 밥풀의 접착력처럼 작은 문제로도 쉽게 와해되어 버립니다. 콩가루집안과 같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함께 견디며 형성된 공동체는 초강력접착체로 결합됩니다. 어지간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초강력접착제인 참사랑으로 연결된 참된 공동체를 만드시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지난 주 뉴스에서 뉴저지주에서 스타레져라는 신문을 돌리는 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분이 신문을 돌리다보니 혼자 사는 노인들이 문 앞의 신문을 집으러나오는 것도 겁을 내는 것을 보고 식료품 사러는 어떻게 나올까 하는 걱정이 들었답니다. 어차피 나는 집집마다 방문하는 것이 일이니 신문돌리는 길에 원하시면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다드릴 수 있다고 했더니 노인들이 어찌나 좋아하며 부탁을 하던지 혼자 매일 이 집, 저 집 식료품 배달심부름을 해주다가 부탁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아내와 아이들까지 나서서 식료품을 사다가 집에서 분류를 해서 노인들 집집에 배달을 해주는데 얼마나 보람이 되는지 노인들도 좋아하지만 이 분과 가족이 더 행복해한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서로 돌아보며 위로를 나누는 공동체는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첫 출발은 기도입니다. 11절입니다.
(고후 1:11) 여러분은 기도로써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느님께서 많은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실 것이며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공동번역)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 능력을 믿던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고난에만 집착하던 미련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내 고통만 위로받으려던 편협함을 버리고 이웃의 고통을 위로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넘치는 위로가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흘러넘치고 이웃에게까지 흘러가게 될 것을 믿고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