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3 은밀한 의 / 마 6:1~4

20200503 은밀한 의 / 마 6:1~4

마 6:1-4/은밀한 의

200503 산상설교17
목걸이
세계적 문호로 꼽히는 프랑스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의 소설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풍자 그리고 입을 딱 벌리게 만드는 반전으로 유명합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은 목걸이가 아닐까 합니다. 19세기말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주인공 마틸드는 아름답지만 가난한 집안 때문에 그녀의 바램과 달리 하급공무원과 결혼합니다. 늘 자신의 아름다움과 어울리는 화려한 삶을 꿈꾸는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남편은 무진 애를 써보지만 그녀를 만족시키지는 못 합니다. 어느 날 그는 교육부장관 집에서 열리는 상류층 사람들의 댄스파티에 초대권을 어렵게 얻어옵니다. 남편이 모아둔 돈 400프랑으로 드레스를 샀지만 몸에 걸칠 장신구가 없어서 속이 상한 그녀는 지인 중 가장 부유한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부탁해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립니다. 드디어 파티의 밤 마틸드는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파티장에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여러 남자들과 춤을 추며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꿈같은 파티장에서 초라한 집으로 돌아온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기절할 듯 놀랍니다. 온갖 방법으로도 목걸이를 찾을 수 없자 도시의 보석상을 이잡듯 뒤져 비슷한 모양의 목걸이를 사기로 하지만 가격이 무려 4만 프랑이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부모님의 유산 18,000프랑을 모두 털어넣고 지인들에게 돈을 꾸고 고리대금사채업자에게까지 손을 벌려 겨우 돈을 마련하여 목걸이를 사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부에겐 엄청난 빚이 남았고 눈물나는 세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녀를 내보내고 집을 창고같은 다락방으로 옮기고 부부가 밤 늦게까지 하루도 쉬지못하고 남의 집 허드렛일 등 투잡, 쓰리잡을 뛴 끝에 10년 만에 모든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 동안 몸과 마음이 너무 고생한 탓에 마틸드는 타고난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폭삭 늙고 등은 구부정하게 휘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거리에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프레스티에 부인을 우연히 만납니다. 그녀는 늙고 초라해진 마틸드를 처음엔 알아보지 못 합니다. 너무나 놀라며 왜 이렇게 변했냐는 질문에 마틸드는 사실 자신이 10년 전 그 목걸이를 잃어버려서 비슷한 것으로 사서 돌려준 것이고 그 때 생긴 빚을 갚느라 고생을 해서 이렇게 되었노라고 털어놓습니다. 포레스티에 부인은 깜짝 놀라며 말합니다. ‘마틸드, 그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이나 했을까…’ 
 
허영의 바이러스
학창시절 이 장면에서 책을 덮지 못 하고 한참 넋을 놓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이 이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청춘을 다 앗아가고 불행의 구덩이로 몰아넣은 것일까? 모파상이 꼬집고 있는 그것은 바로 허영입니다, 허영! 사전에서 허영을 찾아보면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어 겉모습뿐인 영화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례’라고 나옵니다. 책 한 권 읽었는데 박사라도 된 듯 다 아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만 불을 버는데 10만 불을 버는 사람처럼 즐기고 싶은 마음, 실제 자신보다 더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고 누리고 싶은 마음을 허영이라고 부릅니다. 허영은 본인만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 이웃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모든 허영 중 가장 위험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종교적 허영입니다. 종교적 허영은 실제의 자신보다 더 경건하게, 거룩하게, 의롭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허영도 불행을 가지고 옵니다만은 종교적 허영은 그 파괴력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 자신에게는 진정한 구원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고 공동체에 그 허영과 거기서 나오는 위선을 감염시킴으로써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파괴적으로 공동체를 병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 크기 이상으로 자신이 대단한 믿음과 지혜를 가졌으니 사람들을 가르치고 바로 잡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허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마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지혜롭고 믿음이 크니 내 말을 듣고 내게서 배우라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믿음의 허영입니다. 
 
믿음의 허영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본문은 산상설교의 본론에서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지난 주까지 살펴본 첫째 파트에서는 천국백성의 의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셨습니다. 그들의 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나은 것일 뿐 아니라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 하나님처럼 온전한 의이어야만 합니다. 그런 온전한 의가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원수사랑 등의 6가지 대립명제를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6장 1절부터 18절까지는 그 무대를 일상에서 종교생활로 옮깁니다. 구제, 기도 그리고 금식의 세 가지 행위를 예로 드는데 모두가 당시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적 행위 뒤에 허영이라는 불순한 동기가 자리잡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허영은 종교를 타락시키는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 안에 허영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것을 보이고 싶고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장로, 권사, 집사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것이 허영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자기가 나서서 직분 받겠다고 운동하는 사람은 일꾼으로 세우면 안 됩니다. 허영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치료될 때까지 영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공공 앞에 세워 바이러스를 더 많이 퍼뜨리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직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구제의 상
이런 허영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떻게 됩니까? 천국의 복을 잃어버립니다. 1-2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마 6:1)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 6:2) …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에는 상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산상설교 앞부분에서 소개된 복입니다. 그것은 천국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탤런트 차인표 씨는 컴패션이라는 구호단체의 홍보대사로 제 3세계 후원자들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원래 아내 신애라 씨가 가기로 한 인도방문일정을 못 가게 되면서 마지못해 대신 가게 되었는데 가기 싫은 일정을 억지로 가는데다 스텝들과 말 섞기가 싫어서 혼자서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갔다고 합니다. 에어컨도 안 되는 버스를 타고 여덟 시간을 이동하는데 마음에 불평불만이 어찌나 생기는지 빨리 일정 마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더랍니다. 인도자 목사님이 부탁하기를, 지금 가는 곳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니 만나면 아이 손을 잡고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나도 너를 사랑해’라고 한 마디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그 말 해주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도착을 해서 몰려나온 아이의 손을 딱 잡는데 그 순간 주님의 음성이 자신에게 들리는 것입니다. ‘인표야, 그동안 수고 많았다. 왜 이제 왔니? 얼마나 외로웠니?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40세가 되도록 모태신앙으로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도 듣지 못 했던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보다 더 열정적인 컴패션 홍보대사가 되어 6,500명이 넘는 아이들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후원하는 아이들을 방문하면 그 부모들이 몰려나와서 천사가 왔다고 환영하고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그 천사 덕분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먹을 것도 생긴다고 말입니다. 죄많고 보잘것없는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되는 것, 이것이 하늘의 상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일전에 월드비전을 통해 결연행사를 가졌습니다. 이전에도 많은 교우들이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었지만 그 행사를 통해서도 또 많은 분들이 새로운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조만간 또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선교초기에 선진국 기독교인들의 후원을 통해 공부를 하고 생활을 하고 또 유학도 가서 지도자로 자라나 오늘날의 한국을 일으키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
꼴찌박사라는 책의 저자인 건국대 조명환 박사는 아시아태평양에이즈학회장으로 제3세계 어린이들을 에이즈와 각종 질병으로부터 구출하는데 큰 공헌을 한 분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준 두 분의 어머니가 있다고 합니다. 한 분은 낳아준 육신의 어머니요, 또 한 분은 공부시켜 주고 하나님을 믿게 만들어 준 네브라스카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6.25 직후에 태어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 공부는커녕 먹을 것도 없어서 굶기를 밥먹듯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를 미국의 Save the children이란 구호단체를 통해 네브라스카에 사는 에드가 넬슨이라는 여인이 매달 15불씩 45년 동안 후원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녀는 후원금과 함께 편지를 보낼 때마다 ‘하나님이 널 사랑한단다. 이것을 믿으렴.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써주었습니다. 미국에 유학시절 네브라스카로 방문해서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하면 그 때마다 ‘나는 괜찮다.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렴.’하고 못 오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녀가 99세가 되던 해에는 더 늦으면 정말 얼굴도 못 뵙고 떠나시겠다 싶어서 알리지 않고 무작정 네브라스카를 방문했습니다. 그녀 집에 도착하자 거실에서 기다리는데 두 시간 동안 그녀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날 보기가 싫으신 건가? 무슨 이유가 있나?’하는데 두 시간 만에 나온 그녀는 99세의 몸으로 깨끗이 씻고 화장을 곱게 하고 아들을 보러오는데 초라한 모습으로 나올 수가 없어서 두 시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 날 조명환 박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선을 베풀 때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손과 발, 하나님의 천사가 됩니다. 이것이 구제의 가장 큰 상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보이려는 허영으로 하는 이들은 이 모든 하늘의 상을 잃습니다. 그러면 구제하는 이는 무슨 동기로 하여야 합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받는 인정,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입니다. 마태복음 6:33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인정만을 구하면서 구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에게 천국의 복을 상으로 주시고 이 세상의 필요도 부족함 없이 채우십니다. 어떤 이들이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까? 스스로 일꾼이 될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을 숨기고 하나님만 구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세우십니다. 그런 이들이 진정한 교회의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만 구하는 법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만 구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3-4절에서 가르쳐 주십니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그 방법은 은밀하게 몰래 하는 것입니다. 나팔을 부는 것이 과장법이듯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도 과장법입니다. 자신의 손도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은밀하게 합니까? 은밀한 중에는 그것을 보시는 분이 하나님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사람이 보고 있으면 믿음 없는 우리는 그를 의식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하는 구제는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해악만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면 교만과 허영에 사로잡히고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불만이 생겨 시험에 듭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고 인정받을 길이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만 의식하게 됩니다. 그 때 진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게 되고 하늘의 상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구제와 도네이션을 하지만 드러내지 않습니다. 주보에 기부자들을 싣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 기부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진짜 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종교적 허영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푸드드라이브를 비롯해 여러 가지 채널로 익명의 기부가 끊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난 2010년 아이티대지진을 비롯해 최근까지 여러 재난의 때마다 적지않은 기부가 모였고 지금도 월드비전을 통해서 또 우리교회 실버미션을 통해서 제3세계의 아동들을 끊임없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미주에 우리보다 큰 교회들의 지인들과 통화하다가 재난구호로 우리 교회가 모은 후원금을 듣고는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모으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부자들이 많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갚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는 생각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천사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