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9 발 뻗고 자는 밤 / 마 6:25~34

20200719 발 뻗고 자는 밤 / 마 6:25~34

마 6:25-34/발 뻗고 자는 밤

200719 산상설교24
염려가 일상인 시대
지난 달 22일 55세의 할리우드 억만장자 영화제작자인 스티브 빙이 자택인 할리우드 인근 고급아파트 27층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여러 편의 성공한 영화를 제작해왔고 자산이 5억 5천만 달러가 넘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세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인들의 말로는 그가 코로나 사태로 봉쇄조치와 자택격리가 길어지면서 우울감을 주변인들에게 호소해 왔다고 합니다.
최근의 어느 친한 목사님과 대화하던 중에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노라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 이틀에 한 번 꼴이라는 것입니다. 딱히 이것이다 할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래서 몹시 피곤하고 지친다는 것이지요. 흔히들 말하는 공황장애증상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목사도 그런 증세를 겪느냐고 혹 의아해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목사도 교통사고 당하면 다리 부러지는 것처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런저런 정서적 문제를 겪습니다. 
아무튼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감염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면 사태가 장기화되면서는 감염 못지않게 정서적 고통이 커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야기된 경제적 어려움, 봉쇄조치로 인해 느끼는 고립감,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겹치면서 우울증, 불면증 등 다양한 정서적 문제를 가져옵니다. 최근에 교우들과 상담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불안하고 걱정된다, 잠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시니까
염려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과 전화통화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주님은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바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본문 25-26절입니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탐욕과 더불어 제자도의 또 하나의 큰 장애물인 근심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제자는 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까? 예수님은 세 가지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첫째는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옷이나 음식보다는 당연히 우리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그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에게 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보다 더 여러분은 하나님께 소중합니다. 풍요롭고 너그러우신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이 만드신 피조세계의 넘치는 자원을 자녀들에게 부족함없이 공급하십니다.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늘에 나는 새도 매일 먹을 것을 얻는다면 자녀들이 당연히 필요한 것을 얻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아무 유익이 없으니까
둘째 제자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염려가 아무런 유익이 없고 해만 있기 때문입니다. 27절입니다.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괴로움만 더 할 뿐입니다. 잠이 안 오고 밥맛이 없고 의욕이 떨어집니다. 상황을 개선시킬 힘이 사라집니다. 그 결과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반면 염려하지 않아도 상황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오히려 냉정하게 현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개선의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의욕을 가지고 노력하게 도와줍니다. 그 결과 상황이 개선됩니다. 즉 염려는 백해무익하고 염려하지 않음은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염려를 당겨서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을 걱정부터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4절에서 권하십니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내일 일은 내가 아닌 내일이 알아서 염려해 준다는 말입니다. 비유적인 이 말씀은 미래의 염려를 앞당겨하는 어리석음을 꼬집습니다. 염려가 찾아온다면 주님의 이 말씀을 믿고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내일아, 네 염려다. 네가 해라.’ 
 
더 큰 사명이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큰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3절입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엄마에게 자녀의 안전이 자신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듯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의 생계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제자는 생계의 걱정을 초월합니다. 생계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너무나 큰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진주장사가 발견한,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값진 진주와 같습니다. 그 나라는 농부가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밭에서 발견한 보물과 같습니다. 그 나라는 사랑에 마음을 빼앗긴 젊은이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고 싶은 연인과 같습니다. 
자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엄마를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듯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제자를 움직이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를 위해 아들을 기꺼이 십자가에 매어다신 하나님의 사랑, 그 하나님을 향하여 자녀들이 드리는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한 사랑, 이 위대한 사랑이 제자를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게 만듭니다. 이 사랑을 아는 이만이 생계의 걱정을 초월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우선순위의 문제
물론 믿음의 길이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장 먹을것, 렌트비 등이 없어 걱정이 태산인데 하나님 나라만 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 나라만 구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지난 주 화요일 구역일꾼모임을 마치고 한 일꾼이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 보십시다. 
첫째, 예수님은 정확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나라만’ 구하라고 하지 않으셨지요. 이 말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필요보다 우선순위를 가졌다는 말이지, 우리의 필요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먼저 나오고 다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필요를 구하는 노력을 멈추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일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교회일, 전도를 먼저 하고 직업, 집안일은 나중에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것입니다. 직업이든 집안일이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을 생계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라는 말씀입니다. 비지니스를 하는 이유가 돈을 버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고 이 때 우선순위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말입니다. 
비유하자면 야구선수가 시즌을 시작하며 목표를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팀의 우승과 홈런왕 타이틀 획득을 동시에 목표로 둘 수 있습니다. 전자는 팀의 영광과 팀원 모두를 위한 목표요, 후자는 자신의 영광과 가치를 높여 더 높은 연봉을 얻기 위한 목표입니다. 이 두 가지 목표 중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느냐에 따라 타격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그가 홈런왕 타이틀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면 상황이나 작전에 상관없이 장타를 치기 위해 스윙을 크게 해야 하고 그러면 홈런을 칠 확율이 늘어나지만 삼진을 당할 확율도 당연히 늘어납니다. 그리고 팀에서는 희생번트나 단타, 진루타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의 도움을 받지 못 하게 되겠지요. 반면 그가 팀우승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면 주자가 나가 있을 때면 스윙을 작게 해서 삼진확율을 줄이고 홈런은 못 치더라도 공을 맞추어 진루타를 치려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희생번트도 대려 할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감독이라면 어떤 선수를 기용하시겠습니까? 같은 능력을 가진 선수라면 홈런왕 타이틀보다 팀의 우승을 목표로 하는 선수를 쓰지 않겠습니까? 그런 선수는 팀에 유익이 될 뿐 아니라 그 자신도 계속 성장하게 될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홈런왕 따위는 포기하란 말씀이 아니라 팀의 우승을 홈런왕 타이틀보다 우선순위로 놓으라는 것입니다.
 
사명에 헌신하는 인생
2015년 위스콘신 주의 한 다리 위에서 무차별총격사건이 있었습니다. 전직 군인인 27세의 한 청년이 파혼을 당하자 홧김에 행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입니다. 3명이 목숨을 잃은 이 참극에서 32세의 주부 에린 스토펠씨도 복부와 허벅지, 손에 3발의 총알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을 느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내달렸습니다. 7살 아들 이즈라와 5살 딸 셀라를 몸으로 감싸안고 다리밖으로 옮긴 뒤 빨리 도망쳐서 도움을 청하라고 소리치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기적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온라인성금모금으로 미국인들의 성원이 쏟아졌습니다. 
총알이 몸에 박히는 순간의 충격과 고통,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할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요? 엄마에게는 있습니다. 엄마는 그 순간조차도 자신의 고통과 안전이 아닌 오로지 자녀들의 안전만을 생각합니다. 그녀의 눈에 겁에 질린 아이들이 들어오는 순간 어떤 고통과 공포도 그녀의 의지를 이기지 못 합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벌떡 일어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며 아이들에게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까지 그녀는 정신을 잃을 수가 없습니다. 모성애가 위대한 이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 거기에 헌신하는 인생은 비로소 아무 유익이 없는 생계걱정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 3:5) 내가 (평안히)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오늘 밤 평안히 다리 뻗고 주무시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