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6 참 이스라엘 사람 / 요 1:43~51

20201206 참 이스라엘 사람 / 요 1:43~51

요 1:43-51/참 이스라엘 사람

201206 요한복음5/대강절2주
신앙의 장애물
어린 시절부터 천재소리를 들으며 자라 대한민국 최고의 물리학자, 핵과학자로서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내기도 한 정근모 박사가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장 거부감을 느낀 것은 통성기도였다고 합니다. 다른 교회의 문화는 어찌어찌 이해를 하겠는데 큰 소리를 내고 어떤 이는 몸을 흔들며 울부짖기까지 하는 통성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후에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회개기도를 드리고 나서야 그도 거부감 없이 통성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근모 박사에게는 그의 지성에 대한 자부심이 오랫동안 참 진리를 발견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시작이란 책에서 주선태 교수는 간증하기를, 처음 예배를 드렸을 때 예배당에 꽉 찬 교인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만 원씩만 헌금을 해도 도대체 돈이 얼마야? 아들 놈 목사 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대형교회의 예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교회를 모르는 이들 중에는 목사가 부자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저도 서울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였는데 명절에 외가에 갔더니 교회 다니지 않는 친척 어르신께서 ‘요즘 목사가 제일 잘 나간다는데 도완이는 수입이 얼마나 되냐? 대기업 임원 정도는 되니?’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뭐라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편견을 가진 나다나엘
교회와 기독교 신앙을 접한 사람들에겐 진리를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런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에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출신에 대한 편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인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의 한 동네 사람이었던 빌립은 예수님을 따른 후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전도합니다. 요한복음에만 소개되는 나다나엘은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제자 바돌로매와 동일인물일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나다나엘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출신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 합니다. 46절입니다.
(요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 보라.” 하니라.
나사렛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등장하는 중요한 성지 예루살렘이나 세겜, 벧엘 혹은 여리고와 달리 구약에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산골입니다. 그런 작고 대수롭지 않은 시골마을에서 어떻게 메시야와 같은 중요한 인물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편견을 마음에 품고 마지못해 친구 빌립을 따라간 나다나엘은 어떻게 마음이 열릴까요?
모든 것을 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당신께 걸어오는 나다나엘에게 그가 예수님을 알기도 전에 당신이 이미 그에 대해 모두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47-48절입니다.
(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유대사회에서 경건훈련을 할 때를 가리키는 관용어입니다. 유대 들녘에 흔한 무화과나무 아래는 경건한 이들이 햇빛을 피하는 기도와 묵상의 장소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네가 기도할 때 내가 너를 이미 다 보고 있었고 네의 성품, 기질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전지하심에 깜짝 놀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향한 경외감을 표현합니다. 49절입니다.
(요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영혼의 의사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기 전부터 주님은 우리의 출생과 성장과 오늘까지의 모든 삶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교회로 나온 것 같지만 주님은 우리의 발걸음도 사실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는 마음의 염려와 근심, 편견과 고집, 미움과 증오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신 주님은 당신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런 장애물을 제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겸손히 주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때 주님은 그 모든 장애물도 제거해 주십니다. 환자가 의사를 믿고 기꺼이 몸을 맡길 때 최고의 의사는 수술을 통해 몸 안의 암덩어리들을 남김없이 제거해 주듯이 성도가 주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길 때에야 주님은 기쁘게 우리 영혼을 수술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증하신 긍휼의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예수님
주님은 또 우리가 기도하고 묵상할 때 우리 앞에 계십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나다나엘을 그 자신은 몰랐지만 주님이 다 듣고 보고 계셨듯이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QT하고 기도하고 묵상할 때 주님은 그 모든 것을 듣고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자녀들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의 때와 방법이 오묘하고 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것이어서 우리의 시야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는 마치 지구가 도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는 1,037마일의 속도로 자전하고 있습니다. 시간당 100마일로 운전해 보셨습니까? 그보다 열 배 더 빨리 지구는 돕니다. 그러나 정작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중력이 사람들을 붙들고 있어서 지구의 자전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거나 우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붙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응답으로 지금도 거대한 역사와 문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바퀴 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변하는지 못 느낍니다. “주님, 왜 기도하는데 아무 것도 안 바뀝니까?” 바뀌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엄청나게 크고 거대한 변화이기에 자그마한 우리가 못 느낄 뿐입니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것이 바뀌지 않으면 바뀌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 듣고 보고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
예수님은 또 깨끗한 마음을 찾으십니다. 나다나엘을 보고 기뻐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47절을 다시 보십시오.
(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반대되는 말은 ‘간사한 거짓 이스라엘’이 아닙니까? 간사하다는 말과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들은 당시 사람들은 누구를 떠올렸을까요?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은 구약의 족장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족장들 중 가장 간사한 꾀가 많았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장자의 복을 독차지하기 위해 형 에서, 아버지 이삭 그리고 외삼촌 라반을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을 속인 인물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식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이기적인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사기꾼이란 불명예스러운 호칭이 하나도 과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그들을 해방시키셔서 시내산으로 이끄시고 율법을 주신 주님이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냈을 때 기대하신 것은 그들이 조상 야곱의 간사함을 배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그들에게 간사하고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이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 야곱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 하였고 간사한 백성이 되어 멸망의 길을 가고야 맙니다.
깨끗한 마음을 찾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더 이상 조상 야곱을 닮지 않은 간사함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새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무슨 수로 죄와 악에 물들어 탐욕과 교만으로 부패한 사람들의 마음을 간사함이 없는 깨끗한 마음, 참 이스라엘의 마음으로 만드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희생으로 그들의 죄를 씻으시고 성령님의 역사로 그들 안에 새 마음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우신 계획이요, 예수님이 시작하시고 성령님이 완성하신 구원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계획을 들어보십시오. 겔 36장입니다.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새 창조입니다. 고후 5장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령님이 완성하신 새 마음입니다. 고전 6장입니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깨끗한 마음의 성도
미국에서 수학박사과정을 공부하는 34세의 유학생이 있었습니다. 논문 디펜스를 마치고 이제 교수의 사인만 받으면 마침내 학위를 따는 건데 교수가 제출한 논문의 풀이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몇 주를 식음을 전폐하고 겨우 문제를 풀어서 제출했더니 교수가 되었다고 사인을 받으러 오라는 겁니다.
이제 다 되었구나, 안도하고 교수에게 사인을 받으러 가려는데 이상하게 계속 그 문제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책상에 앉아 다시 한참을 풀어보았더니 자신이 새로 풀어서 제출한 과정도 여전히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도 학위를 못 딴다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입니다. 젊음을 다 쏟아부은 세월이 고스란히 허송세월이 된 것은 고사하고 더 이상 학교에서 장학금과 생활비도 안 나오고  돌아가면 국가에서 지원받은 유학자금도 모두 갚아야 하고 취업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그래서 교수도 모르고 넘어갔으니 나도 모른 채 하고 사인을 받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 일이 마음에 걸리는 겁니다. 기도를 하는데 주의 백성이 힌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데 거기 잉크가 떨어져 더러워지면 어떻게 살아가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새 피조물인데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이 괴로워 결국 교수를 찾아가 자신이 새로 제출한 문제풀이도 잘 못 되었고 이 문제를 풀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고 교수실을 나왔습니다. 박사학위도 날아가고 망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가 간절히 바라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에 절망과 두려움 대신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평생 처음 경험해 보는 하나님의 임재가 차 안에 가득 차서 끊임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일주일을 보냈는데 어느 날 밤에 꿈에서 자신이 그 문제를 풀어내더라는 것입니다. 깨어서 책상에서 얼른 풀어보았더니 진짜 문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그 길로 교수에게 달려가 문제풀이를 제시했더니 교수가 축하한다며 그 자리에서 사인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수학박사가 되어 한국에 돌아온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지금은 수원하나교회를 섬기는 고성준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새 영을 창조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의 구원역사를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다나엘을 전도한 빌립이 가르쳐 줍니다.
(요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 보라.” 하니라.
주님이 안드레에게 ‘와 보라’고 하신 것처럼 빌립도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전도합니다. 누구든지 겸손히 주님께 가서 동거하면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됩니다. 아무리 큰 장애물도 제거되고 아무리 큰 죄악도 용서되고 아무리 큰 어려움도 이겨내고야 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새 피조물로 만드시고 거룩하고 의로운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와 보라는 주님의 초청을 듣고 주님과 동거하여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