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 룻 1:8-18

20210509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 룻 1:8-18

룻 1:8-18/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210509 어버이주일
아름다운 이야기 룻기
매일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끔찍한 뉴스에 몸서리치시는 분이라면, 그치지 않는 고난에 몸과 마음이 상하여 지친 분이라면,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하여 만사가 귀찮아지신 분이라면 읽으셔야 하는 성경이 있습니다. 바로 룻기입니다. 룻기는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게 아름답습니다. 룻기는 악인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룻기의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선함과 인내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룻기의 인물들은 고난에 흔들리지만 고난으로 인생이 망하지는 않습니다. 룻기의 인물과 이야기는 주님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그림 같습니다. 룻기는 마치 지치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주신 주님의 선물보따리 같은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고난의 먹구름을 뚫고 비추는 한 줄기 소망의 햇살처럼 우리 마음을 비춥니다.
룻기 이전 책이 사사기입니다. 사시기는 21장 내내 주님의 명령도 사명도 잊어버린 채 각기 제 소견대로 살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추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마치 온갖 사건, 사고로 가득한 신문을 읽듯 말입니다. 그러다가 룻기로 넘어오면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율법도 모르는 이방여인이 율법을 아는 이스라엘보다 더 신실한 삶을 살고 그녀를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려와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룻기는 사사기의 비극으로 지치고 상하신 주님과 성도의 마음을 치유하는 따뜻한 희극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하였습니다. 3천 년 전 이민자인 셈입니다. 그러나 모압에서 나오미는 더 큰 불행을 만났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늙고 가난한 그녀는 고향 베들레헴에 흉년이 끝나고 양식이 넉넉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젊어서 앞길이 창창한 두 모압 며느리를 자유롭게 떠나보내려 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며느리와 헤어지는 장면입니다.
나오미의 며느리 사랑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려 강권합니다. 8-9절입니다.
(룻 1: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룻 1:9)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두 며느리는 그러나 나오미를 모시고 함께 유대땅으로 가겠다고 고집합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다시 며느리들을 강권합니다. 11-13절입니다.
(룻 1: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룻 1:12)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룻 1: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젊고 건강한 며느리라도 곁에 있어야 먹을 것을 구하든 시중을 들든 도움이 될 터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나오미가 더욱 마음을 쓰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 젊고 앞길이 창창한 며느리들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녀는 13절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룻 1:13)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불행은 나오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녀의 품위를 빼앗지는 못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주변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며느리들의 앞길을 열어주고자 자신이 기꺼이 희생합니다. 그녀가 거듭 강권하여 며느리들을 돌려보내려 한 것은 그녀의 말이 체면치례가 아니라 진심임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성숙한 어른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줍니다.
기성세대가 존경받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늘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것이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랑도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룻의 결심
나오미의 거듭되는 강권을 듣고 큰며느리 오르바는 울며 떠나 부모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전히 떠나지 않으려는 작은며느리에게 나오미는 또 다시 권합니다. 16절입니다.
(룻 1: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그러나 룻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16-17절입니다.
(룻 1:16) 룻이 이르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고향을 떠나고 가족도 떠나려 합니다. 그러면 고향도 없고 가족도 없는 나그네가 되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어머니의 신앙마저 자신의 신앙으로 삼으려 합니다. 어머니의 고향을 자기 고향으로 삼고 어머니를 자기 가족으로 삼으려 합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길이 평탄하지 않을 것을 그녀도 너무 잘 압니다. 유숙한다 즉 남에게 하룻밤 신세를 진다는 뜻입니다. 부유하고 안정된 삶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사랑
그녀의 확고한 태도를 보면 나오미가 그랬던 것처럼 체면치례로 시어머니를 따르겠다는 것이 분명 아닙니다. 도대체 룻은 어떤 사람이기에, 어떤 이유로 피한방울 섞이지 않고 가난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하려는 것일까요? 시어머니의 뜻이 이렇게 확고하고 자신은 아직 젊어서 새인생을 살 기회가 남아있으니 동서 오르바처럼 떠난다고 해서 누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원망을 해도 이상할 것 없지 않을까요? ‘내가 남편보고 결혼했지, 시어머니 보고 결혼했나? 재수가 없으려니까 남편은 금방 죽어버리고 빈털털이 시어머니만 떠맡게 되었네. 왜 내게 이런 일만 생기는 거야?’ 이런 원망 한 마디 없이 룻은 어떻게 이런 고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가요?
우리는 그녀의 과거를 모릅니다. 어떤 집안 분위기에서 태어나고 배우고 자랐는지 어떤 결혼생활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지는 일을 통해 그녀의 됨됨이와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룻은 나오미가 시키지도 않는데 먼저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와 시어머니를 돌봅니다.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하매
율법은 추수하는 이들이 곡식을 자르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줍지 않고 내버려 두라고 명령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주워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의미로 일종의 사회보장법입니다. 룻은 자신이 처한 가난을 한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극복하며 자신과 시어머니를 돌봅니다. 나오미가 그녀를 딸이라고 부르는 데서 나오미 역시 그녀를 더 이상 며느리가 아니라 친딸처럼 여깁니다. 룻은 불행을 만나 가난했지만 그 됨됨이는 결코 천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녀를 평가하는 일꾼의 말에도 드러납니다.
(룻 2:7) (일꾼이 말하길) “그(룻)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부모공경의 상
그녀의 신실함은 그녀와 나오미 모두에게 고난을 극복할 길을 열어 줍니다. 모압 소녀가 그토록 신실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밭주인 보아스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배려를 합니다. 이를 안 나오미는 그의 친족인 보아스와 룻을 결혼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룻과 나오미 그리고 이 집안을 모두 구원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나오미의 집안의 호적에 올라 상속자가 되며 대를 잇습니다. 보아스는 또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할 때 나오미의 집안이 팔았던 땅을 다시 사서 나오미 집안의 소유로 돌려주고 오벳이 상속하도록 합니다. 그 오벳의 손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됩니다. 룻은 모압출신의 이방여인에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릅니다.
(룻 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룻 4: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얼마나 큰 상입니까? 룻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고 자신과 시어머니와 집안을 다시 일으켰을 뿐 아니라 메시야의 족보에 오르는 영원한 상까지 받습니다. 그녀는 왜 이런 상을 받은 것입니까?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엡 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씁쓸하고 우울한 소식이 가득한 세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는 이 어버이주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