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7 열두 살이라 / 막 5:41-43

20210627 열두 살이라 / 막 5:41-43

막 5:41-43/열두 살이라

210627 주일설교
열둘인가
본문을 읽는 중 뭐야, 또 야이로야, 하신 분이 틀림없이 있었을 겁니다. 베데스다 연못가를 빠져나오는데 5주가 걸렸는데 야이로의 집에서는 언제 나오나? 혹시 우리가 야이로 지옥에 빠진 겁니까? 오늘로 5주째인데 다음 주면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의미심장한 서술이 한 곳 있습니다. 그것은 죽었다 살아난 야이로의 딸이 열두 살이었다는 것입니다. 42절입니다.
(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그게 어때셔요? 12살인게 무엇 대수입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왜 좁은 지면에 소녀의 나이를 기록했을까요? 야이로의 나이나 야이로 아내의 나이는 기록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복음서의 다른 병자들 중 나이가 기록된 이가 있었습니까? 아마 잘 떠오르지 않으실 겁니다. 왜요? 기록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혈루증 여인의 투병기간도 12년이었습니다. 25절입니다.
(막 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그녀의 투병기간은 왜 또 굳이 기록했을까요? 복음서의 다른 병자 중 투병기간을 기록한 환자가 있었습니까?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웠던 이가 38년 되었다는 기록을 제외하면 거의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왜요? 기록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굳이 이 연결된 두 개의 사건에 12라는 수를 거듭 기록해 두었을까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성경의 수는 대부분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며 시험당하셨을까요? 노아의 홍수는 40일 동안 비가 쏟아졌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을 광야에서 시험당했습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시내산 위에 머물렀습니다. 다윗왕도 40년, 솔로몬왕도 40년 통치를 했습니다.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럼 12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대표적 12는 바로 야곱의 열두 아들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출애굽시키신 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신약의 대표적 12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필 12명을 제자로 삼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실패한 백성 구약의 열두 지파를 대신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시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가 육체적 이스라엘이라면 신약의 열두 제자는 영적 이스라엘로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은 왜 12라는 수를 거듭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예수님을 통해 경험할 은혜가 이 두 여인을 통해 예고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무엇일까요?
수치를 벗은 백성
첫째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수치를 벗었습니다. 혈루증은 설명드렸다시피 몸에서 피가 끊임없이 나오는 병입니다. 여인의 몸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것이어서 이 기간에 남자는 아내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이를 자세히 다룬 율법이 레 15장입니다.
(레 15:19)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 유출이 피면 칠일 동안 불결하니 무릇 그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만약 유출이 정기적이지 않고 만성적이면 그녀는 피가 그칠 때까지 부정을 벗을 수 없습니다. 25절입니다.
(레 15:25)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그녀는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성전 바깥마당에 들어가지 못 하는 것은 물론 남자가 가까이 가거나 접촉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됩니다.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타메는 불결함이나 더러움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구약의 문맥은 ‘하나님께 나가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면 부정한 여인은 어떻게 정결해져서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첫째 피가 멈추어야 하고 둘째 제사장이 피흘리는 제사를 통해 부정을 씻어야 합니다.
(레 15:28) 그의 유출이 그치면 칠일을 센 후에야 정하리니 … (레 15:30) 제사장은 그 (비둘기) 하나는 속죄제로, 하나는 번제로 드려 유출로 부정한 여인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할찌니라.
제사를 마친 제사장이 부정함을 씻었다고 선언하면 그녀는 비로소 부정함을 벗고 정결해집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에게 바로 이 두 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녀는 피가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그녀가 깨끗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그러면 피흘린 제사는 언제 일어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제단에 달리셔서 보혈을 흘리실 때 일어납니다. 그 피의 능력을 히브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죽음을 이긴 백성
둘째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겼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녀는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났습니다.
(막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죽은 이를 살립니다. 같은 일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고도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포로로 끌려갔고 끌려가지 않은 이들은 폐허가 된 땅에서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목숨을 연명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고백하지 못 했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죄로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악으로 부정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무덤에 묻힌 듯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수치를 씻고 무덤에서 다시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포로된 땅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있던 이들을 택하셔서 고향땅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다시 발견하고 읽고 소망을 얻었습니다. 그 율법, 말씀이 소망을 주었습니다. 에스겔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겔 37:4) 또 내(에스겔)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하나님의 백성)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겔 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말씀을 듣고 소망을 회복한 신실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일으킬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죽었던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시고 그들의 모든 수치를 씻으셨습니다. 십자가 제단에서 치르신 예수님의 보혈의 제사는 모든 부정을 씻으십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죽었던 백성을 살리셨습니다.
이 살림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죽었던 영을 다시 살려 거듭 나게 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영적 부활, 중생, 거듭남입니다. 다음으로 죽었던 몸도 다시 살려 부활의 새 몸을 입게 하실 것입니다. 장차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경험할 육신의 부활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난 백성
교회는 어떻게 이런 은혜를 경험합니까? 예수님은 혈루증 여인에게 무어라 하셨습니까?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야이로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그 길은 바로 믿음입니다. 혈루증 여인도 믿음으로 수치를 벗었고 야이로도 믿음으로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된 교회, 성도 여러분도 믿음으로 이 은혜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여러분의 모든 수치를 씻으십니다. 지난 시절의 모든 죄와 허물, 미련함과 어리석음이 모두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 받습니다. 이 정결함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립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립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합니다. 이 보혈의 씻음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죽음에서 살리십니다. 죽었던 여러분의 영을 살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소망없는 세상에서 참된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의미없던 인생에 참된 목적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여러분의 죽고 썩을 육체도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품은 이들은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시련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장애물도 영원한 성령의 기쁨을 빼앗지 못 합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품으시길 축복합니다.
고 옥한음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한 교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내 혼자 신앙생활하다가 뒤늦게 남편까지 신앙을 갖게 된 부부가 있었습니다. 늦게 믿은 남편은 복음을 깨닫고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고 아내보다 더 뜨겁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늘 말하기를 나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신 분이라면 세상에 용서받지 못 할 죄인은 없다며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두 아들 중 첫째가 음악을 잘 해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는데 그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안고 부부는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부부는 곁에 앉은 한 신사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부부의 말을 가벼운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이탈리아에 무슨 일로 가십니까?” “큰 아들 장례를 치르러 갑니다.” “네?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선생님이 예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들 장례치르러 가는 길에 전도할 만큼 예수 믿는 것이 중요합니까?” “네, 중요합니다.” 그는 숙연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겠노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부부는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이탈리아에 무슨 일로 다녀오십니까?” “큰 아들 장례를 치르고 오는 길입니다.” “네,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선생님이 예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니, 저같으면 정신이 나가서 아무 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전도를 하십니까?” “제 아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의 소망을 품고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슬프지만 다시 만날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영생을 모르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믿음으로 수치를 벗고 믿음으로 부활을 약속받은 성도는 그 무엇도 절망케 할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 교회의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허락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