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 신 존재의 단서 / 롬 1:20

20211010 신 존재의 단서 / 롬 1:20

롬 1:20/ 신 존재의 단서

211010 신존재증명1
기독교인이 되려면
21세기에 기독교인이 되려면 적어도 두 개의 철학적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째는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고 둘째는 그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입니다. 여기 앉아계신 분들은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답을 얻으셨겠지요. 이 질문 중 하나라도 답을 얻지 못 한 이들은 저 교회 밖에 있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분들 중에도 어쩌면 아직 답을 얻지 못 한 분들이 계시고 또 답은 얻었지만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할 정도로 확실히 알지 못 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기에 최근에 이와 관련한 질문을 제가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한 두 달 이상 요한복음 6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 몇 주 동안은  이 두 질문의 답을 찾아본 후 7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주와 다음 두어 주간 먼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살펴보고 이어서 과연 그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하는 질문을 답해 봅니다.
더 합리적인 사고는 ?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는 유신론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는 무신론자입니다. 먼저 이해할 것은 무신론이 유신론보다 더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가지는 태도라는 오해입니다. 유신론은 비과학적, 비합리적 믿음이라 여기고 무신론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신론도 유신론과 같은 믿음입니다. 왜일까요? 신의 존재는 애초에 과학의 탐구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탐구로는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신이 있다는 증거도, 없다는 증거도 못 찾습니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도, 신의 부재를 증명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유신론은 증명할 수 없는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고 무신론은 증명할 수 없는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이니 결국 두 가지 모두 믿음, 신념입니다. 둘 중 어느 신념이 더 과학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실제 여러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게 나옵니다. 과학적 사고가 신의 존재를 믿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흔히 빅뱅이론과 진화론 등 현대의 우주와 생명탄생가설이 신의 부재를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오해입니다. 이에 대해 다음에 설명을 좀 더 하겠습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이 모두 과학의 탐구영역이 아니니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둘 중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 사고인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 사고 즉 이성에 부합하는 혹은 이치에 맞는 사고는 증거가 없을 땐 단서와 정황을 봅니다. 여기 살인사건이 났다고 합시다. 방안에 CCTV도 없고 살해도구도 없어서 누가 살인을 했는지 증명할 수 없지만 방 밖에 있는 CCTV에 그 시간에 그 방에 들어간 유일한 사람이 찍혔다면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그 시간에 그 방에 들어간 것이 그가 피해자를 살해한 증거는 아니지만 가해자로 볼 유력한 정황, 단서인 것은 틀림없지요. 그러므로 그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보다 그 방에 들어갔던 사람을 용의자로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 사고입니다. 만약 다른 정황이 없는데 그를 제외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을 용의자로 본다면 이는 대단히 비합리적인 사고라고 하겠지요.
똑같습니다. 과학은 신의 존재 여부를 증명할 수 없지만 합리적 사고로 신의 존재의 단서와 부재의 단서를 모두 찾아보고 비교해 보아서 신을 인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지, 부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지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신이 존재한다는 단서를 더 많지만 가장 뚜렷한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우주의 존재
첫째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단서는 이 우주의 존재입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답을 얻지 못 한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그것은 ‘왜 우주는 부재하지 않고 존재하는가’입니다. 자연세계의 모든 현상이 인과율을 따릅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벌어지는 어떤 일이든 볼 때마다 누가 그런거야, 왜 그런거야, 무엇 때문에 저렇게 된 거야 하고 묻습니다. 원인을 찾는 것이지요. 이 사고가 과학을 발달시켜왔고 오늘 우리들의 삶이 존재하게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수용되는 우주탄생가설은 빅뱅이론입니다. 150억 년 전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 엄청난 에너지가 모인 특이점이 Big Bang 폭발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는 공간과 더불어 물질과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서 가장 풀리지 않는 점은 그 엄청난 에너지와 특이점이 어디서 왔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폭발은 왜,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것입니다. 가설의 답은 ‘모른다’입니다. 그 전에 없던 에너지 분명 어디선가 왔을테고 폭발은 어쩌다 일어났을터인데 어찌 알겠느냐는 것이지요.
이 단서를 보고 우리는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에너지와 특이점과 대폭발을 만들고 초래한 어떤 존재 신이 있어서 우주를 창조하였다는 것을 믿든지, 아니면 모든 자연세계에 적용되는 인과율이 오직 빅뱅에만 예외여서 이 모든 것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존재했고 이유도 없이 갑자기 응축했고 이유도 없이 갑자기 폭발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합리적입니까?
우주의 정교함과 질서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둘째 단서는 이 우주의 정교함과 질서입니다.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이 우주가 생명체 탄생에 적합하도록 기가막힌 확율을 가진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빛의 속도, 중력상수, 다양한 핵력의 크기 등이 수조 분의 일의 확율로 좁은 범위 내에 동시에 들어와있기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를 Fine-Tuning Argument-미세조정원리라고 합니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우주 안에는 그 기원을 알수없는 질서가 존재합니다. 만류인력의 법칙을 비롯해 일반적 물체의 운동법칙을 다루는 고전역학, 원자보다 작은 물질을 다루는 양자역학, 빛보다 빠른 물질에 관한 상대성이론, 전자와 자기를 다루는 전자기학 그리고 열, 온도 등을 다루는 열역학 등으로 정리하는 온갖 법칙이 그 안에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광산에 핵폭탄을 터뜨렸더니 하늘로 솟구친 철가루가 땅에 떨어지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정교한 부품처럼 깍여서 서로 들어맞더니 땅에 떡하니 수퍼컴퓨터가 떨어지고 그 안에 기원을 알 수 없는 OS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도 깔리더니 부팅이 되고 돌아가기 시작하고 누가 관리하는 이도 없는데 바이러스도 잡아내고 부품도 교환되면서 온갖 작업을 다 해내는 꼴입니다. 우주의 정교함과 질서는 이 비유와도 비교할 수 없이 더 발생하기 어려운 낮은 확율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무신론자들의 반박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답은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가정하는 것입니다. 무신론 전도자인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책 ‘만들어진 신’에서 주장하기를, 무수히 많은 빅뱅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수많은 무질서한 우주가 생겼을 것이고 그 중에 우리의 우주처럼 정교하고 질서를 가진 우주가 하나쯤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한번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통해 선택해야 합니다. 지혜롭고 전능한 신이 있어서 이토록 정교하고 질서로 유지되는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든지 아니면 무수히 많은 빅뱅의 결과 우연히 이토록 정교하고 질서있는 법칙으로 운행되는 우주가 탄생했다고 믿든지 둘 중 하나를 말입니다. 여러분이 포커게임을 하는데 상대가 포커의 최고의 패인 로얄스트레이트플러시를  다섯 번 연속 손에 쥐어서 여러분의 돈을 다 땄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생각하겠습니까? 상대가 운이 말도안되게 좋아서 그런 패를 연속해 쥔 것까요? 아니면 상대가 뭔가 조작을 한 걸까요? 물론 우연히 그렇게 될 확율은 이런 정교함과 질서를 가진 우리 우주탄생의 확율과 비교도 안 되게 낮습니다.
우주의 아름다움과 의미
세 번째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단서는 이 우주가 드러내는 아름다움과 의미입니다. 밤하늘의 은하수와 오로라를 볼 때, 햇살이 부서지는 푸르른 하늘을 볼 때, 하얗게 부서는 장엄한 폭포와 끝없이 깊은 계곡과 형형색색의 꽃밭을 볼 때, 우주와 자연의 한 장면을 볼 때마다 우리는 아름다움과 경외감과 때로 황홀감을 느낍니다. 뽀송뽀송한 아기의 볼에 입맞출 때, 장성한 자녀의 늠름한 모습을 볼 때, 품에 안기는 강아지의 털을 쓰다듬을 때, 연인의 따뜻한 손을 잡을 때 우리는 사랑을 느낍니다. 배고픈 아이를 먹이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모습에 선함을 느낍니다. 베토벤을 듣고 아름다운 화음을 들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는 무언가 가치있는 일에서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을 이룰 때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이런 아름다움과 경외감과 황홀함, 사랑과 선함과 기쁨, 가치와 소명과 의미를 경험하지 못 할 때 우리는 큰 외로움과 슬픔과 공허감에 시달립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하고 공연을 보고 예술활동을 직접 하기도 하고 선한 봉사에 뛰어들기도 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직업과 가정에 헌신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아름다움과 의미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아름다움과 의미에의 갈망을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아름다움과 의미는 무엇의 단서일까요? 바로 아름답고 경외롭고 사랑과 선함과 자비로 충만한 신의 존재의 단서가 아닙니까? 신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현대 무신론은 이 모든 것을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합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에 더 유리하도록 이런저런 감정, 느낌, 이미지를 뇌가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결국 이 모든 아름다움과 의미는 화학작용에 의한 환상입니다. 원래 아름답고 추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하고 악한 무엇이 있지 않습니다. 황홀한 모짜르트 따위는 생존과 번식에, 뭐가 유리한지 모르겠으나, 유리하기에 느끼는 환상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가치도, 아름다움도, 기쁨도, 이유도 없이 그저 DNA를 좀 더 퍼뜨리기 유리한 환상일 뿐입니다.
장 폴 사르뜨르는 ‘구토’이란 소설에서 신이 없는 삶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는 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우연히 나타났다.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우리가 존재하려고 이렇게 먹고 마시지만 우리 존재의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합리적 사고를 해 보십시다. 우리는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는 신을 인정하고 선함과 의로움을 구하고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느끼며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선한 삶을 선택하든지, 신을 비롯한 이 모든 것이 생존에 유리한 환상인 것을 인정하고 선이고 악이고 진리이고 거짓이고 아름다움이고 추함이고 다 환상일 뿐인 세상에서 생존과 번식만을 구하며 살기를 선택하든지. 무엇이 더 세상이 보여주는 단서와 정황에 근거한 합리적인 선택입니까?
신의 단서가 가득한 세상
오늘 본문은 이 세상이 무엇을 보여준다고 말씀하십니까?
(롬 1:20)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공동번역)
여러분은 이 우주와 세상과 인생을 돌아볼 때 무엇을 보십니까?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유신론도, 무신론도 모두 믿음입니다. 과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서는 차고 넘칩니다. 그 무수한 단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과 은총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그 무수한 단서에 눈감고 우연히 내던져진 세상에서 의미없는 삶을 생존과 번식만이 목표인 고깃덩어리의 삶을 택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태도일까요? 혹시 구멍에 머리를 박고 사냥꾼은 없다고 끝없이 되내이는 꿩과 같은 인생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