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 / 새롭게 도약하는 희년 / 눅 4:16-21

20220102 / 새롭게 도약하는 희년 / 눅 4:16-21

눅 4:16-21/새롭게 도약하는 희년

220102 신년 첫 주일
1. 하나님과 시작하라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평화가 새 해를 맞는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일터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의 첫 주일입니다. 올 해는 임인년 호랑이의 해라고 합니다. 소망으로 가득해야 할 새 해 첫 주이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에 소망과 기대 못지않게 떨치지 못 한 걱정, 근심이 자리잡고 있을 줄 압니다. 팬데믹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울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팬데믹도 가로막지 못 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구름도 언제까지나 태양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큰 태풍도 며칠을 넘겨불지 못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김없이 팬데믹을 구름을 뚫고 우리의 삶을 비추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팬데믹의 태풍을 멈추고 기이어 다시 맑은 날을 주십니다. 이 은혜와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힘차게 새 해를 출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희년을 선포하신 예수님 
올 해는 우리 교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올 해 8월이면 창립 50주년을 맞기 때문입니다. 반 세기의 세월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성경은 50년이 되는 해를 특별하게 부릅니다. 바로 희년입니다. 그래서 올 해 표어는 ‘새롭게 도약하는 희년’입니다. 희년을 맞는 우리 교회가 힘써야 할 사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희년을 이 땅에 선포하러 오신 예수님이 하시려 했던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당신이 무엇을 하실지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The Year of Grace)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두 번이나 자유를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혜의 해, 사면의 해 곧 희년을 전파하려고 하십니다. 희년이 곧 은혜의 해요, 사면의 해요 또한 자유를 주시는 해입니다.
3. 자유를 선포하는 희년
출애굽 후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희년법이었습니다. 7년마다 가지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킨 다음 해 곧 50년째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고 이 때는 자유를 공포하였습니다. 레위기 25장을 보십시오.
(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 25: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 해에는 잃어버린 신분도 회복하고 잃어버린 토지도 회복함으로 두 가지 자유를 회복했습니다. 첫째는 신분의 자유, 둘째는 경제적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이 희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거의 준수되지 못 했습니다. 이런 율법의 불순종이 이스라엘 패망의 원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희년을 선포하여 구약의 이스라엘이 실패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오셨습니다.
4. 참된 자유
그럼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자유는 어떤 것입니까? 신분의 자유입니까, 경제적 자유입니까? 아니면 둘 다입니까? 아직도 인도처럼 신분제가 존재하는 나라가 있으니 신분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빈곤의 속박에 묶인 이들은 훨씬 더 많으니 경제적 자유도 정말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자유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포함하는 더 근본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 자유를 요한복음 8장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것은 바로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는 무지와 교만으로 우리 눈을 가려 신분의 자유를 앗아갑니다. 죄는 탐욕과 허영으로 우리 눈을 가려 경제적 자유도 앗아갑니다. 죄는 모든 종류의 자유를 앗아가서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지 못 하면 어떤 자유도 사실은 없습니다. 손발을 묶는 사슬을 풀어버렸다 한들 여전히 감옥 안에 있다면 어떻게 자유롭다 하겠습니까? 신분의 자유를 얻고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죄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묶인 자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이 죄로부터 자유케 하려고 이 땅에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씻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전할 것은 바로 이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5. 자유를 누리라
우리 뉴저지장로교회가 지나간 반 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 맞이하는 반 세기를 향해 도약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전하신 이 자유의 희년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어떤 영역에서 그리 해야 합니까? 첫째는 우리 스스로의 삶에 선포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죄로부터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건만 많은 이들이 그 자유를 못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음을 믿지 못 하고 죄책감과 죄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성령님이 죄를 이길 능력을 주셨건만 죄를 완전히 끊지 못 하고 유혹에 넘어가는 잘못을 되풀이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믿고 죄와 허물을 고백하여 용서받고 또 다시 죄와 싸울 능력을 허락받아야 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신실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고 그 속죄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로부터의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희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6. 자유를 선포하라
둘째는 이 자유를 모르는 이들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곧 전도와 선교입니다. 자유를 모르는 이들은 죄를 지으며 살고 죄책 속에 살고 죄책 속에서 멸망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까? 착하게 사는데요?’ 도둑질과 살인만이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창조주를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교만의 죄입니다.
그 죄책은 착하게 산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죄책은 자신과 이웃에게 고통과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 죄책은 마침내 지불해야 할 때가 옵니다. 그것이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만큼 큰 선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뉴저지장로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시금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회복하는 희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7. 자유를 나누라
셋째는 죄의 결과로 병든 세상을 향해 자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죄는 세상을 병들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신음하는 세상에 자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에 가득한 차별의 사슬, 빈곤의 사슬, 억압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올 해 예산안에 구제비 외에 희년예산 10만 불을 더 책정했습니다. 자유를 선포하고 죄악의 사슬을 끊는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큰 돈이 아닙니다. ‘세상에 빈곤과 차별과 억압이 얼마나 극심한데 고작 그것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온 세상의 죄악의 사슬을 끊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너무 작고 우리 힘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바가 있습니다. 한 사람 도시락 밖에 안 되는 오병이어를 주님 손에 드렸더니 주님은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주님 손에 맡겨드리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사슬을 끊지 못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이라도 믿음으로 시작하면 주님께서 나비효과를 일으키시리라 믿습니다. 나비의 갸날픈 날개짓도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불러 일으키듯이 믿음으로 내디딘 작은 발걸음을 하나님께서 크게 써주시리라 믿습니다. 교우 여러분들도 병든 세상에 자유를 선포하는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이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20-21절입니다.
(눅 4: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눅 4: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공동번역)
우리 모두가 온 세상에 참 자유를 선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때에 2022년이 뉴저지장로교회 역사에 새 장을 여는 희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