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6 새 술은 새 부대에 / 막 2:18-22

20220116 새 술은 새 부대에 / 막 2:18-22

막 2:18-22/새 술은 새 부대에

220116 교회의 변화
1. 은퇴장로의 지혜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1960년대 히피운동이 한창일 때 보수적인 남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대학캠퍼스에서 전도받아 예수님을 믿은 한 히피청년은 주일에 가까운 교회에 나가라는 전도자의 말을 듣고 캠퍼스 근처 가장 가까운 교회를 찾았습니다. 정확한 예배시간도 알 리 없었던 그는 일어나는 대로 발길을 옮겨 교회로 도착하여 닫힌 문을 열었습니다. 그 교회는 중산층 교인들이 모두 정장차림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예배하는 보수적인 곳이었습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가운데 목사의 설교가 한참 진행되는데 갑자기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예배실 문이 열리더니 펑키스타일의 머리와 찢어진 셔츠와 청바지, 샌들을 신은 젊은이가 들어서는 것을 본 교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크지도 않은 예배당에 빈틈없이 들어찬 회중으로 앉을 자리를 찾지 못 한 그는 쭈삣쭈삣 앞으로 가다보니 맨 앞까지 갔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 두리번거리던 그는 슬그머니 통로 가운데 앉았습니다. 설교를 멈춘 목사와 교인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는데 뒷줄에 앉아있던 백발이 성성한 한 은퇴장로가 일어나더니 그 청년을 향해 뚜벅뚜벅 걸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생각하기를, 저 장로님이 아무 것도 모르는 무례한 청년에게 예절을 가르쳐 주시려나보다 하였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긴장한 젊은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며 그 은퇴장로는 말하였습니다. ‘나도 늘 바닥에 앉아 예배를 드려보고 싶었다네.’ 그리고 청년의 곁에 털썩 주저앉아서 목사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그제서야 목사도 정신을 차리고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2. 히피의 시대와 미국교회
저는 이 이야기가 정말 좋습니다. 읽을 때마다, 전할 때마다 감동이 느낍니다. 이 은퇴장로의 모습이야말로 낮은 이의 자리로 내려가는 성육신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 젊은이와 교우들을 모두 부끄럽잖게 하는 지혜와 배려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는 당시 히피운동을 미국교회가 어떻게 대하여야 했는지와 그 결과를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1970년 대 히피들을 주목하고 전도하자는 Jesus Movement가 시작되었습니다. 척 스미스 목사의 갈보리채플과 같은 교회들은 히피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가 전도하고 예배하였습니다. 수천 명의 히피 젊은이들을 바닷가에서 세례를 받고 갈보리채플을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히피들이 부르던 곡조에 가사를 붙여 부르던 살아계신 주, 작은 불꽃 하나가, 여기에 모인 우리 등의 CCM은 오늘날 주류 기독교 음악이 되었고 새찬송가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히피뮤지션들은 미국크리스챤음악을 이끄는 새로운 리더로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젊은이 예배에서 부르는 곡은 거의 모두 히피음악에 뿌리를 둔 CCM입니다. 갈보리채플의 철학을 받아들인 새들백처치, 윌로우크릭처치 등은 오늘날 미국교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반면 당시 대부분의 미국교회는 히피들의 볼썽사나운 머리와 옷, 무례함과 제 멋대로인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며 Jesus Movement에 소극적이었습니다. 히피들이 기독교인이 되려면 자신들처럼 점잖고 교양있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교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거나 노인들만 남아 오늘날 미국교회 쇠락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피들을 전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쇠락의 길을 걸은 교회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이 교훈을 깨닫지 못 했다는 점입니다.
3. 새 술은 새 부대에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한 사람들의 비난으로 시작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의 율법을 순종하지 못 한 죄를 회개하며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대속죄일에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씻어주러 오신 메시야가 옴으로 새 시대가 열렸는데 기뻐해야지, 슬퍼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 메시야가 그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그 때에 금식하라고 명하십니다. 새시대를 새로운 신앙의 방식으로 맞이해야 한다며 두 개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첫째는 베옷을 수선하는 비유입니다. 이미 수축이 많이 된 낡은 베옷에 새 베조각을 붙여 바느질하면 많이 수축하는 새 베조각이 더 이상 수축하지 않는 낡은 베조각을 잡아당겨 결국 틑어져 못 쓰게 됩니다. 둘째는 발효되어 부풀어오를 새포도주는 충분히 늘어나는 새가죽부대에 넣어야 하는데 이미 다 늘어나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낡은 가죽부대에 넣으면 새포도주의 팽창을 견디지 못 해 터져버리고 결국 포도주와 가죽부대를 모두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변화하는 새시대를 새로운 관점, 태도, 방식으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미주의 한인교회는 당시 미국교회가 직면했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히피운동처럼 요란하지 않기에 무슨 도전인가 하겠지만 오래 전부터 한인교회 젊은이들의 교회탈출을 교육가들은 Silent Exodus라고 부르며 염려해 왔습니다. 한국교회, 한인교회 할 것 없이 절반 이상의 교회가 이미 교육부가 운영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교회가 청년부가 없습니다. 오직 장년부로만 구성된 회중조차도 절반 이상이 은퇴자인 교회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에 더해 팬데믹의 거센 쓰나미를 맞았습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현장예배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에 선 많은 이들이 팬데믹 동안 믿음을 잃었을 것이라고 기독언론마다 우려를 쏟아냅니다. 팬데믹이 끝나도 계속 온라인예배를 드리겠다는 응답이 설문조사마다 적지않게 나옵니다. 이런 변화를 빨리 이해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발효되는 새포도주의 힘을 견디지 못 하고 터지는 낡은 가죽부대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미주한인교단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 교단 해외한인장로회의 최근 몇 년의 가장 큰 이슈는 노회통폐합입니다. 왜 노회를 통폐합합니까? 노회 소속 교회들이 속속 문을 닫아서 독립노회로 기능을 못 합니다. 그래서 옆의 노회와 통합해서라도 살아남자는 발버둥입니다.
4. 젊은이예배와 영상예배
이 두 가지 시대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당회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첫째는 젊은이예배의 강화입니다. 예전부터 팔팍 4부와 오클 4부는 찬양예배로 드려왔지만 오늘부터 더욱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경배와 찬양에 더욱 비중을 두고 예배순서를 대폭 간소화하였습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대표기도가 없습니다. 찬양을 하다가 다같이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끝냅니다. 이게 무슨 예배야, 이래서 믿음이 제대로 자라겠어,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대학시절 학생선교단체에서 이렇게 예배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젊은이 혹은 2세가 중심이 된 교회, 불신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새들백, 윌로우크릭교회도 다 이렇게 예배드립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믿음이 적다 할 수 있습니까?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요, 순서와 형식과 음악의 장르는 순전히 문화적인 요소입니다. 비본질은 예배자에게 가장 편안한 것으로 하면 됩니다.
또한 오클 4부 예배를 앞으로 영상중심예배로 변화시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이 말은 현장예배를 주로 하고 온라인으로 중계도 하는 예배라는 기존의 컨셉을 버리고 반대로 온라인중계를 중심으로 하며 현장예배도 드릴 수 있게 예배의 컨셉으로 꾸미겠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에는 시간과 재정의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왜 이런 시도를 합니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팬데믹 이후 온라인예배는 사역의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이미 온라인예배를 넘어 온라인교회라는 개념으로, 요즘 주목받는 메타버스개념을 이용하여 사역을 시작한 교회들이 많습니다. 이미 대세가 된 온라인교회, 온라인예배를 외면하겠다는 것은 옛 부대를 죽어도 버리지 않고 새 술을 담겠다는 미련에 다름아닙니다. 여러분, 이미 쇼핑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대부분 온라인으로 하지 않으셔요? 현장판매를 고집하던 메이씨, J.C.Penny 같은 대형공룡쇼핑몰들이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망했습니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던 온라인몰이 세계를 휩쓸고 있지 않나요? 현장이냐, 온라인이냐의 선택이 아닙니다. 머지않아 망하느냐, 부흥하느냐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5. 성육신하는 교회
선교의 기본은 성육신입니다. 선교대상의 눈높이로 내려감입니다. 새술을 새부대에 담기 위해선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 눈에 어색하고 이상하고 낯선 것을 수용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선교사도 선교지로 가서 현지인의 삶의 자리로 내려가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는 선교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불편을 감수하려하지 않고 옛 관점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들에게 우리와 같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 선교가 가장 비판받았던 고압적 태도요, 폭력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의 사도 바울과 전도자들 그리고 초대교회는 성육신 하신 주님,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라는 교훈을 따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익숙했던 율법준수의 옛관습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온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도록 고속도로를 깔아 주셨습니다.
초대교회가 섰던 이방선교의 갈림길, 미국교회가 섰던 히피선교의 갈림길에 우리도 서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새 부대를 준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선교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올 해가 우리 교회에게 서서히 침몰하는 타이태닉처럼 될 것인지, 새롭게 도약하는 희년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할까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선교의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