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6 자유의 길 / 요 8:30-36

20220306 자유의 길 / 요 8:30-36

요 8:30-36/자유의 길

220306 사순절 첫 주
1. 자유의 대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2주 째 접어들었습니다. 침공 직후 압도적인 러시아의 군사력으로 3일 만에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전쟁을 끝내리란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푸틴의 오판을 초래한 이유 중 하나로 4,500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꼽습니다. 국방장관은 62,000명의 해외 우크라이나인들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귀국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 중에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3명의 우크라이나인 단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 간 서울서 살면서 연주활동을 해온 47세의 주친 드미트로씨는 아내와 아들을 한국에 두고 홀로 귀국해 콘트라베이스 대신 총을 들었습니다.
이들이 안전한 삶을 버리고 목숨까지 걸고 고국에 돌아가 싸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유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 역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의 대가입니다. 희생과 대가지불 없이 거저 누리는 자유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얻기 위해 무슨 대가를 지불하고 계십니까? 아마 이 질문이 의아하실 것입니다. 우린 이미 자유로운 나라에서 자유롭게 사는데 무슨 자유가 더 필요하며 또 무슨 대가를 지불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질문은 여러분만 가진 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기도 합니다.
2. 가장 중요한 자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진리가 그들을 자유케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렇게 반문합니다.
(요 8: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사실 종 된 적이 없다는 유대인들의 대답이야말로 듣기에 의아합니다. 유대인들이 사는 가나안 땅은 7백 년 전 앗수르에 북왕국이 멸망한 이래 줄곧 바벨론, 페르샤, 헬라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7백 년 동안 내내 자유를 빼앗긴, 남의 종이었습니다. 그럼 종 된 적이 없다는 그들의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곧 정신적 자유를 말합니다. 주후 73년 1차 대로마유대독립전쟁이 실패로 끝나고 도망친 최후의 병사들이 유대광야 사해 곁 마사다요새에서 포위당해 몰살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지도자였던 제사장 엘레아세르는 병사들에게 외치기를 ‘우리는 오래 전 로마인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종이 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했고 이에 모두가 자결함으로써 죽음을 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비록 땅을 빼앗기고 몸은 구속되어 물리적 종의 신세가 되어도 그보다 더 중요한 마음 속 자유는 결코 빼앗길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요즘 말로 일종의 정신승리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리적 자유보다 더 중요하다는 정신적 자유보다도 더 중요한 자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자유였습니다.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자유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물리적 자유는 정치, 사회, 경제, 신체의 자유입니다. 인류역사는 이 자유의 확대를 위한 투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자유도 목숨을 걸만큼 중요하고 우리는 많은 희생대가로 지금 큰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둘째 정신적 자유는 사고와 판단의 자유입니다. 이는 우리의 세계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거짓이데올로기를 벗겨내고 진실을 발견할 때 누리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우리를 거짓 권위에 굴종하지 않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이나 이단교주를 신성시하거나 소를 신으로 숭배하는 맹신으로부터 해방될 때, 인간의 신분이 카스트제도처럼 날 때부터 정해져 있거나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거나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으로부터 해방될 때 누리는 자유입니다. 이 역시 얻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고 지금도 치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자유가 영적 자유입니다. 이는 거짓된 영 마귀의 종노릇하는 상태로부터의 자유,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이는 물리적, 정신적 자유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고개페 얼마나 큰 대가지불을 하여야 할까요?
3. 누가 자유를 주는가
그 큰 대가지불을 하고 자유를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35-36절입니다.
(요 8:35) (죄의) 종은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 거하지 못하되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요 8:36)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지, 들어가지 못 할지도 결정하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고귀한 보배피를 흘려 죄값을 완전히 치르시고 죄의 종된 이들을 해방시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이가 바로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아들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여러분이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자유케 하십니까? 31-32절입니다.
(요 8:31)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은 믿는다는 유대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그 말씀 안에 거하여 제자된 이는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압니다. 그 진리 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자유케 하십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십니다. 교인으로 부르심이 아닙니다. 일대일 양육을 받는 이들만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믿음의 길에 들어선 모든 이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는 교인은 괜찮은데 제자는 부담스럽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런 분은 아직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제자됨은 예수님의 말씀에 거함으로 됩니다. 교회 다님으로가 아닙니다. 세례 받음으로가 아닙니다. 직분 받음으로가 아닙니다. 헌금 함으로가 아닙니다. 말씀에 거함으로만 제가 됩니다. 말씀에 거함은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의 질서가 됨을 의미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처음 운전할 때 제일 어려웠던 것이 스탑사인에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운전할 때 누구도 스탑사인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호등이 없거나 사람이 없으면 스탑사인만 있는 곳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습관이 되어 미국에서 스탑사인을 봐도 멈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습니다. 티켓을 한두 번 떼고 나서야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스탑사인에 멈추지 않는 차를 보면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스탑사인에 멈추지 않을 수 있지?’ 저는 어느 새 미국의 운전법규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운전하는 것을 보면 미국에 온지 얼마나 됐는지가 보이고 미국도로법규에 적응했는지, 못 했는지도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서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의 질서가 되었다면, 사람들이 볼 때 우리 삶의 질서가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수님과 그 말씀이 진리인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죄의 종된 우리의 신분을 자유케 하셨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삶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죄의 권세를 무너뜨림을 경험합니다. 이 믿음과 경험을 통해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습니다. 마치 부부가 서로를 깊이 아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과의 이 인격적 관계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케 하고 죄의 권세로부터도 자유케 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자유케 하시는 아들의 제자가 되어 그 아들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심으로 진리로 자유케 되는 제자가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자유의 길
두 아이 엄마인 정윤주 집사는 이혼에 더해 큰 아이의 장애로 인한 수술, ADHD 발병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녀의 탈출구는 약물복용이었습니다. 수면제와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 매일밤 8알씩 약을 삼키고서야 겨우 잠들기를 7년이나 하였습니다. 그러나 늘 약에 의존해 살아가는 자신이 하나님과 아이들 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약복용을 멈추자 즉시 금단현상이 찾아왔습니다.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 시력감퇴, 구역질과 구토와 식욕부진, 온 몸의 통증과 가려움증, 식은 땀과 오한이 심해 한여름에도 전기장판과 히터를 켜고 수면양말을 신지 않으면 잘 수가 없었습니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찾아오고 급기야 자신이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는 모습이 눈 앞에 계속 그려져 몇 달을 베란다 문을 잠근 채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약 끊기를 포기하려던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온전한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자 약을 끊기 전에 그녀가 먼저 끊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첫째 그 날부터 원망을 멈추었습니다. 더 이상 남편 탓, 아이들 탓, 세상 탓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둘째 자학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정작 자신은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학대만 하고 있었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용서하였습니다. 감사일기를 적으며 자신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남편을 용서하기로 하자 예배가 너무 드리고 싶어 오랫 동안 못 가던 교회를 나갔습니다. 통곡하며 회개하고 집에 오는데 마음에 ‘걸어야 산다. 걸어라’하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금단현상으로 몸을 추스리지도 못 하겠는데 이를 악물고 나가서 동네를 한참 걷고 돌아오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날부터 매일 걷다가 아이들도 달래서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매일 전쟁을 치르던 아이들과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보며 감사하며 마음에 쌓였던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이들의 얼굴이 나날이 밝아지더니 아이들이 앓던 ADHA, 무기력증, 우울증, 틱장애가 다 치료되고 아이들의 치료약을 다 끊었습니다. 마침내 7년 만에 온 가족이 약을 완전히 끊고 그녀는 이 경험을 살려 ‘단약디자인 연구소’를 열고 약물중독치료와 삶과 습관 변화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그녀는 진리의 말씀으로 약물중독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의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거함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 모두 말씀 안에 거하는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심을 알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그저 교회만 다니는 이들이 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믿었다 하지만 말씀 안에 거하지 않았던 유대인들과 같이 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