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0 주님의 마지막 소원 / 요 17:17-26

20220410 주님의 마지막 소원 / 요 17:17-26

요 17:17-26/주님의 마지막 소원

220410 종려주일
1. 분열된 몸
20세기의 사도 바울이란 별명을 가진 변증가 C.S.루이스가 한번은 친구인 카톨릭 사제에게 농담으로 이렇게 놀렸다고 합니다. “이보게, 성경 어디에 마리아를 숭배하란 가르침이 있단 말인나? 있다면 좀 가르쳐 주게나.” 그러자 그 사제도 웃으며 이렇게 대응하더랍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궁금한 게 있다네. 성경 어디에 그리스도의 몸을 그토록 많이 나누라는 가르침이 있단 말인나? 나도 좀 배우세.” 그의 뼈있는 농담에 루이스도 수긍할 수밖에 없더랍니다. 전 세계 카톨릭이 하나의 시스템 아래 통일되어 있는 반면 개신교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었습니다. 주요교파만 장로교와 감리교, 침례교 등 10여 개가 넘고 교파는 다시 수많은 교단으로 나뉘어 약 33,000여 개가 넘습니다. 한국에만 400여 개에 이르는 교단이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이러한 분열은 분명 주님이 원하시는 바는 아닙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들이 연합하지 못 하고 나뉘기를 원하겠습니까? 이 사실은 주님이 이 땅에서 제자들을 위해 드리신 마지막 기도에도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2. 주님의 마지막 소원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이 주일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고난의 한 주간을 보내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주민들이 당신을 환영하며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길에 깔았던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을 지내고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고난주간을 지킨 후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저녁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신 후 그들을 위해 하신 기도입니다. 스승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보고 또 부활한 스승이 승천한 후 세상에 남을 제자들을 향해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이 간절한 기도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구하셨습니까? 21절입니다.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이 하나가 되신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과도 하나게 되게 하옵소서. 연합하게 하옵소서. 연합이 왜 중요합니까? 그 연합을 세상이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합한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고 마귀를 물리칩니다. 반면 분열된 교회는 이런 능력을 드러내지 못 하고 마귀를 물리치지도 못 합니다. 국가축구팀이 타국대표와 싸울 때 얼마나 큰 응원을 받습니까? 그런데 우리 선수들끼리 싸운다면 상대팀은 얼마나 비웃을 것이며 국민은 또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사이가 좋지 않은 세 아들을 불러서 막대기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부러뜨려 보라고 했습니다. 건장한 아들들이 모두 가볍게 부러뜨리자 이번에는 세 개의 막대기를 큰 아들에게 부러뜨리라고 주었습니다. 첫째는 물론 둘째, 셋째 아들도 모두 부러뜨리지 못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당부하기를, ‘이것만 기억해라. 너희가 서로 싸우면 고난 앞에 판판이 부러지고 말 것이지만 서로 연합하여 힘을 모으면 어떤 고난도 너희를 부러뜨리지 못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아버지의 심정으로 이 아버지가 당부한 바를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일깨우셨습니다. 하나 된 교회라야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마귀를 싸워 이깁니다. 이것은 예수님 앞에 있던 사도들 뿐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당부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요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사도)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교회)도 위함이니
3. 하나되는 길
오늘 우리도 하나로 연합해야 합니다. 그럼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뉜 우리가 카톨릭처럼 하나의 교파와 교단으로 연합운동, 에큐메니칼 운동을 해야 합니까? 그것이 가능할까요? 언듯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만 하나됨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됨이란 어떤 상태를 가리킵니까? 먼저 하나됨이란 똑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는 결혼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성별이 같아집니까? 생김새가 같아집니까? 기질이 같아집니까? 다 다른 상태로 남는데 하나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같아집니까? 첫째는 그들은 한 가정에 속합니다. 둘째는 사랑으로 교제하여 연합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첫째 우리는 한 교회에 속합니다. 그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파와 교단에 속한 어느 교회가 아닙니다.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은 그의 책 신국론에서 교회는 눈에 보이는 제도로서의 수많은 지역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단 하나의 우주적 교회로 나뉜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에는 참 성도도 있지만 거짓 성도도 있습니다. 각 지역의 교회마다 있는 참 성도를 서로 연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네트워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의 우주적 교회가 있습니다. 이 우주적 교회에 소속됨으로써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4. 진리의 말씀을 받음으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교파와 교단이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도록 애써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결국 교파와 교단이 카톨릭처럼 완전히 통합되지 않더라도 여전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단 하나의 우주적 교회에 속함으로써 말입니다. 이 교회에 속한 이는 개신교인일수도, 카톨릭교인일수도 혹은 정교회교인일수도 있습니다. 장로교인일수도, 감리교인일수도 혹은 침례교인일수도 있습니다. 어느 교파, 교단에 속했느냐와 상관없이 이 교회에 속할 수 있습니다. 교파와 교단이 아니라면 무슨 기준으로 이 참 교회에 속할 수 있습니까? 그 답을 예수님은 당신의 기도에서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6-8절입니다.
(요 17:6) …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 17: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말씀)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요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고 받고 지킨 이들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이들입니다. 이 말씀은 순종하는 이들을 거룩하게 만듭니다. 17절입니다.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말씀은 듣고 믿고 지키는 이의 신분을 거룩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행위를 거룩하게 변화시킵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하나님 나라에 소속시킵니다. 우리는 교파나 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나 직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만 참 교회에 소속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의 몸된 참 교회에 속하였습니까? 주님의 모든 말씀을 듣고 믿고 지킴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참 교회의 성도로 드러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서로 사랑함으로
둘째로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가 됩니다. 이 비밀을 예수님이 기도 중 가르쳐 주셨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요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6) …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의역하면 ‘아버지와 내가 사랑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그들도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입니다.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의 참 교회에 속하듯 서로 사랑하는 이들도 하나가 되어 참 교회에 속합니다. 이 모델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하나됨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심으로 완전히 연합하셨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 하나님은 서로 교제하셨습니다. 이 본을 좇아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하나가 됩니다.
‘목사님, 이 세상의 교회를 보세요. 온갖 사람이 다 있는데 어떻게 모두 사랑합니까? 사랑할 만한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잖아요. 목사님은 이 사람들이 다 사랑스러우세요?’ 사랑은 젊은이가 연인을 볼 때처럼, 할머니가 손주를 볼 때처럼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며 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이란 ‘좋아하고 설레는 마음상태’가 아니라 ‘유익을 구하는 의지와 실천’입니다. 산상설교를 보면 ‘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사랑과 나란히 나온 표현이 박해자를 위해 기도함입니다. 원수가 어떻게 연인처럼 설레고 박해자가 어떻게 손주처럼 예쁩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그를 미워하고 저주하지 말고 긍휼히 여겨서 기도하는 마음의 의지를 갖고 실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조차 자연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라야만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설명하기를 ‘오래 참고 온유하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고 하였습니다. 왜 참아야 합니까? 마음에 안 들기 때문 아닙니까? 왜 온유해야 하나요? 화가 나려고 하기 때문 아닌가요? 견디는 것 역시 힘들기 때문이지요. 기쁘고 설레고 행복한데 뭘 참고 온유하고 견딜 필요가 있습니까?
사랑은 이처럼 마음에 안 들고 공존하기 힘들고 괴롭히고 박해하는 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만드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형제, 자매를 긍휼히 여기고 그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으로 축복하고 견디고 용납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사랑해도 스데반을 돌로 친 이들처럼 끝까지 변화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로운 판단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순종하여 사랑으로 대한 이들은 하나의 거대하고 참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하도록 성령의 역사로 연결하십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믿고 순종할 따름입니다.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 되는 첫째 길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 지키는 것이요, 둘째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길은 사실 하나입니다. 진리의 말씀의 핵심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계십니까? 진리의 말씀을 받아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뉴저지장로교회 교인을 넘어서서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그리스도의 몸된, 참된 교회에 속한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