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4 약함과 강함 / 딤후 2:1-2

20220724 약함과 강함 / 딤후 2:1-2

딤후 2:1-2/약함과 강함

220724 주일설교
1. 약함과 강함
여러분은 강합니까, 약합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여기 이 여인을 보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평가해 보십시오. 엘리엇 터브먼은 흑인, 노예, 여자, 장애인이란 4중고를 겪으며 살았습니다. 1822년에 메릴랜드주의 한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난 그녀는 10대 시절 농장주가 던진 쇳덩이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고 피투성이가 되어 며칠을 사경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 살았습니다. 그 일로 평생 사라지지 않는 두통과 발작, 기절과 수면과다증에 시달렸습니다. 여러 농장으로 팔려다니며 구타와 채찍질을 일상으로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멸시받고 보잘것 없고 약한 사람 중 하나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녀는 출애굽 이야기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하나님이 모든 이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밤마다 자유인이 되는 꿈을 꾸고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었습니다. 마침내 1849년 27세의 그녀는 목숨을 걸고 필라델피아로 탈출하여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용기는 작다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자유로 만족하지 못 했습니다. 노예사냥꾼에 쫓기는 중에도 그녀는 더 안전한 북부로 도망치는대신 메릴랜드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지하철도란 이름의 기독교노예해방운동조직에 가입한 그녀는 퀘이커교도와  메노나이트교도들의 도움을 받아 겨울 밤에만 며칠에 걸쳐 걷고 또 걷는 방식으로 모두 13차례에 걸쳐 70여 명의 가족과 이웃 노예들을 탈출시켜 북부와 캐나다로 이주시켰습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간호사와 정찰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콤바히강 전투에서 700명의 노예들을 구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1913년 91세로 주님 품에 안기기까지 남은 생애 그녀는 여성참정권 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2. 강하라
오늘날 수많은 그녀의 전기는 그녀를 흑인들의 모세라고 부릅니다. 미시간주에는 그녀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2016년 미재무장관은 새로 발행되는 20달러 지폐에 그녀의 초상이 실릴 것이라 발표하였습니다. 자, 이제 우리 중 누가 그녀를 약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보다 더 강한 믿음, 강한 용기, 강한 헌신의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입니까? 건강하고 돈많고 지식많고 지위높음과 같은 1차원적 강함과 다른 차원의 강함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강한 성도가 되길 바라십니다. 날마다 처하는 고난과 시련을 이기는 진짜 힘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 중인 그의 동역자이자 아들처럼 여기는 젊은 제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본문 1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강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왜 ‘강하라’고 권면합니까? 디모데를 둘러싼 척박한 상황 때문입니다. 그는 젊었습니다. 미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병약했습니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바울은 디모데의 위장병 때문에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합니다. 그는 바울처럼 기질이 강하거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도 아닙니다. 바나바처럼 부드러운 기질의 일꾼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가 섬기는 교회는 정반대였습니다. 로마제국 아시아주의 주도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거주민도 많았고 교인도 많았고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고린도교회처럼 온갖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첫째 문제가 23절에 나옵니다.
3. 다툼과 거짓을 대항하여
(딤후 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첫째는 다툼이었습니다. 예나지금이나 교회에는 항상 다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민생활에서 받는 무시와 스트레스를 교회와서 풀어야 하는데 모두가 대접을 받고만 싶고 대접하는 이는 많지 않으니 다툼은 생기기 마렵입니다. 2천 년 전 에베소인들 별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명합니다.
(딤후 2: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다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천사만 있는 줄 알다가 다툼을 보고 시험이 들어 믿음을 잃습니다. 교회에는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가 마지막날까지 섞여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아직 모릅니다. 디모데는 이런 어리석고 무식한 다툼을 막아야 합니다. 둘째는 거짓입니다. 16-17절입니다.
(딤후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암)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망령되고 헛된 말 곧 거짓과 비방입니다. 이런 말은 암처럼 공동체에 빨리 퍼집니다. 항상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이 빨리 퍼집니다. 좋은 말은 안 믿지만 나쁜 말은 쉽게 믿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녹음기를 품에 넣고 하루 종일 한 말을 기록해 보십시오. 감사를 많이 합니까, 불평을 많이 합니까? 커피숍에 앉은 동안 감사와 칭찬을 많이 합니까, 불평하고 비난을 합니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민수기 13-14장을 보면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돌아보고 와서 10명이 그 땅을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악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삽시간에 이들의 불신앙과 비방이 온 회중에 퍼져 그들이 밤새도록 울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2명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며 가나안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외치지만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런 거짓과 악한 인간의 본성과도 디모데는 싸워야 합니다.
4. 온유와 진리로
디모데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첫째 다툼은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24-25절입니다.
(딤후 2: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딤후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다툼에 휘말리지 말고 온유하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인내해야 합니다. 당연히 거역하는 이가 있습니다. 거듭 온유하게 훈계해야 합니다. 9명이 회개하지 않아도 1명이 회개할 가능성을 보고 온유하게 훈계해야 합니다.
둘째 거짓에 대항하여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거짓을 이기는 유일한 능력은 진실입니다. 온갖 이단사설, 거짓과 모략, 비방과 획책의 천적은 진리입니다. 거짓은 어둠이요, 진리는 빛입니다.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해가 뜨면 사라집니다. 방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몽둥이가 아니라 전등입니다. 진리의 전등을 켜면 거짓의 어둠은 사라집니다. 거짓은 진리의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모략은 섭리의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진리의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의 승리를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5. 은혜 안에서 강하라
이렇게 다툼을 온유한 훈계로, 거짓을 진리의 선포로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강함이 필요합니다. 그 강함은 목소리가 크거나 힘이 세거나 무서운 표정을 지음으로 드러나는 강함이 아닙니다. 은혜 안에서 드러나는 강함입니다.
(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은혜 안에서 강해야 합니다. 어떤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것입니다. 사함받은 죄인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자신이 500데나리온의 빚을 탕감받은 은혜를 깨닫는 것 외에는 50데나리온 빚진 이웃을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디데모도 사람인데 다투고 대드는 이들에게 어떻게 온유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자신도 죄와 악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던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늘 되새겨야 합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와 악을 깨닫는 사람은 복됩니다. 자신이 누리는 은혜의 크기를 압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아무리 돌아봐도 자신만한 사람이 없다 여기는 이들은 불행합니다. 자신의 죄와 악을 깨닫지 못 하니 의인인 줄 알고 두려움 없이 형제, 자매를 정죄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먼 바리새인입니다. 우리가 받아 누리는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깨달으시길 축복합니다.
6. 진리 안에서 강하라
둘째로 은혜 안에서 강함은 예수님의 진리로 충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온갖 비방과 살해위협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의 비방과 위협을 평생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엇이 주님과 바울이 이런 위협을 이기게 해주었습니까? 그 안에 충만한 진리였습니다. 요한복음 1:14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시며 맡기신 인류구원의 사명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하신 주님이 부탁하신 진리의 복음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주님과 바울을 자신의 안위도 잊어버리는 강한 용사로 만들었습니다.
디모데가 인간의 신념, 의지, 용기로 에베소 교회를 섬겼다면 진작에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맡기신 진리의 말씀, 사명을 붙들었기에 그는 굴복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진정한 강함입니다. 거역하는 이와 다투지 않고 온유하게 훈계하는 힘, 거짓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진리의 승리를 믿고 선포를 멈추지 않는 인내. 이런 강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옵니다. 그 은혜 안에서 강한 이들은 평안을 누립니다. 시 3:5-6입니다.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 3: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런 평안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의 증거입니다. 자,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강합니까, 약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진리 안에서 진정한 강한 용사가 되어 세상을 이기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