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8 성장하는 인생 / 엡 4:11-15

20230108 성장하는 인생 / 엡 4:11-15

엡 4:11-15/성장하는 인생

230108 주일 설교
1. 인생의 목적 
“우리는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내일까지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성도는 저절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은 간혹 우리를 성화시키기보다 죄의 부담만을 키우기도 한다… 자신의 죽음과 매일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스도인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는, 15세기 수도사 토마스 아 캠피스의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한 대목입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이 책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천 번을 거듭 읽더라도 끝없는 만족을 준다… 이 책의 영감은 고갈되는 법이 없다.”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런 극찬을 받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을까요? 이 책의 내용은 제목이 말해 주듯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더 닮아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실천한 수도사 토마스 아 캠피스의 묵상집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하고도 영원한 숙제이자 그리스인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지난 주에 교회의 목적이 복음전파 곧 선교라고 말씀드렸는데, 또 다른 교회의 목적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닮음 곧 성화입니다.
선교가 교회의 사명이라면 성화는 성도의 사명입니다. 선교를 위해 성령님은 은사를 주시고 성화를 위해 성령의 열매를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화시키시고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본문 12-13절입니다.
(엡 4:12) (교회의 직분을 세우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두 번이나 거듭 교회의 직분을 세우신 이유를 ‘성도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그 온전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사람입니다. 그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해 배워서 아는 그대로 믿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왜 삽니까? 원하지도 않았는데 눈 떠보니 인간으로 태어난 것뿐 아무 목적이 없습니까? 기왕 태어났으니 더 잘 먹고 더 잘 살려고 살아갑니까? 정치, 경제, 문화, 예술에 족적을 남겨보려고 살아갑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적을 주셨습니다. 바로 성화와 선교입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한 사람이 되어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전파함입니다.
2. 장성한 분량
예수님처럼 온전해짐, 장성한 분량에 이름은 어떤 것일까요? 14절입니다.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좇아가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어린아이 수준의 사람은 거짓과 속임수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 결과는 요동함입니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요동치는 작은 호수처럼 그 마음이 근심, 걱정, 시기, 미움, 불안, 우울의 파도에 이리저리 요동칩니다. 우리가 왜 이토록 근심,걱정 가득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 합니까? 우리 마음이 어린 아이처럼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성숙은 우리가 이렇게 요동하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돕습니다. 성인은 크고 넓은 바다처럼 생각을 깊고 넓게 합니다.  거짓에 잘 속지 않아서 쉽게 요동치지 않습니다. 거짓을 분별하고 멀리 하여 옳은 것을 합니다. 무엇이 옳습니까? 15절입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랑의 동기로 참된 행동을 합니다. 사랑으로 가정을 행복하게 세웁니다. 사랑으로 일터를 튼튼하게 세웁니다. 사랑으로 성도를 건강하게 세웁니다. 사랑으로 교회를 은혜롭게 세웁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성인입니다. 이런 일은 성숙한 성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모든 분야에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행함에서 성장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3. 지속적인 성장
그런데 이런 예수님 수준의 성숙함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상이지만 동시에 우리로서는 감히 꿈꾸기도 어려운 과제입니다. ‘감히 나로서는 어떻게 저 수준에 도달하지? 포기하자, 그냥 이렇게 살다 죽지 뭐…’ 혹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용기를 내십시오. 그 누구도 하루 아침에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미션을 주시고 우리가 낙심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실제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보면 우리는 용기를 얻습니다. 그 중 하나로 사도 바울을 보십시다. 우리는 흔히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완벽한 믿음과 예수님 수준의 성숙함을 가진 바울을 머리에 그리는데 이는 착각입니다. 바울 역시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간 사람입니다.
4. 강한 자기애
바울의 성숙은 그의 편지에 나타난 자기이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승천하신 주후 33년 후 약 3년이 지난 36년경 회심한 것으로 봅니다. 약 10년 후인 45년 경부터 전도여행을 시작하고 5년 후인 50년경부터 편지를 씁니다. 바울편지를 기록한 시기를 셋으로 나눕니다. 50-57년까지의 선교여행 중 기록한 초기 편지, 58-64년까지 감옥에 갇힌 시기에 쓴 중기 편지 그리고 65-66년경 두 번째 감옥에 갇혀 기록한 후기 편지입니다. 초기 편지에서는 그의 자기의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고전 15:10)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덧붙히기는 하나 자신이 얼마나 많이 수고하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고후 11: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그는 다메섹에서 회심하여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사역했지만 강한 자기의를 하루아침에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역에 자부심을 가졌고 예루살렘의 지극히 큰 사도 베드로와 요한 등에 비교당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바리새파 기독교인들에게 강한 적대감을 가졌으며 자시이 세운 고린도교인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강한 어조로 자신를 변호했습니다.
(고후 11:22) 그들(바리새파 기독교인)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고후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
그는 거듭 자신이 사도이며 그 누구보다 충성되다는 사실을 강변하기에 바빴습니다.
5.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
이랬던 바울이 3차례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감옥에 갇혔을 때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엡 3:7) …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
에베소서는 중기 편지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사도라고 강변하던 바울은 이제 자신을 일꾼이며 성도 중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소개합니다. 후기 편지인 디모데전서로 가면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욱 겸손해집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회심한 직후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다만 그 깊이가 얕았기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수고를 자랑하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자신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열심히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라고 했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같이 자격 없는 자도 쓰임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켜 이제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결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도’가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을 알면알수록 자신의 죄인됨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 외에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앎에서 성장하고 겸손에서 성장합니다. 그의 평생에 걸친 성장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택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실 때 계획하시고 기대하시고 예상하셨던 성장입니다. 그의 시행착오와 허물과 실수를 인내하고 기다리시면서 그를 위대한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바울의 ‘나의 나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은 조금도 과장이 아닌 진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실 때도 바울 못지않은 사랑과 은혜, 크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취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당신을 닮도록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이 계획을 믿고 알고 순종하는 이들은 더 놀라운 성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고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더욱 원하고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더 바라보고 더 닮아갑니다. 예수님은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보시고 기다리시고 성장하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그 사랑과 긍휼로 우리는 오늘도 변화의 소망을 품고 성장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헛된 인생목적은 우리를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목표요, 주님과 동행하는 가장 복된 길입니다. 2023년 여러분의 목표가 매일매일 예수님을 더욱 닮는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