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5 가지치기하는 농부 / 요 15:1-8

20230305 가지치기하는 농부 / 요 15:1-8

요 15:1-8/가지치기하는 농부

230305 주일설교
1. 최고의 포도
저는 과일이 주식이라 할 만큼 좋아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포도를 참 좋아합니다. 굵고 싱싱하고 달콤한 한국산 포도와 비길만한 것은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이런 포도는 당연히 저절로 생산되지 않습니다. 농부의 큰 정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해 농부는 어떤 수고를 할까요? 이 농부의 수고를 잘 이해하면 우리 영성에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포함한 요한복음 15장부터 17장까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시내의 최후의 만찬 자리를 떠난 직후부터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마 어두운 예루살렘 시내를 걸으시거나 예루살렘과 겟세마네 동산 사이의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실 때 하셨다고 봅니다. 본문 1-8절에서 예수님은 당신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들려주십니다. 이 본문을 두 주에 걸쳐 묵상합니다.
2. 참포도나무
1절에서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7번이나 반복하신 ‘에고 에이미’ 곧 ‘나는 무엇이다’란 표현의 마지막 7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당신을 포도나무 그 중에서도 참포도나무라 비유하신 것은 왜일까요? 생각해 보니 ‘이 교훈을 가르치기에 포도나무가 좋은 비유가 될 것 같아’서였을까요? 늘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신약의 교훈은 모두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구약 이사야서에서 포도나무의 이미지를 차용하셨습니다.
(사 5: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사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이스라엘)를 심었도다.
땅을 개간해 심은 이 극상품 포도나무는 여호와께서 가나안땅에 이주시킨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기대하신 바가 무엇이었다는 말입니까? 바로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곧 세상에서 가장 보배롭고 거룩한 당신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저그런 인생을 살라고, 등따시고 배불러 걱정이 없는 인생을 살라고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인생, 극상품 포도나무 같은 인생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포도나무 비유는 시편에도 나옵니다.
(시 80:8) 주께서 한 포도나무(이스라엘)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시 80: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시 80: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시 80: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그 땅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복을 누려야 했고 또 그 복을 온 세상에 전하여야 했습니다. 이 역시 오늘날 성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복을 누리며 그 복으로 인해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어 세상에 그 열매를 퍼뜨리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애초에 이 복과 사명을 부여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나 죄악으로 실패하고 남북으로 분열되더니 멸망하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참포도나무가 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내팽개친 하나님의 복과 사명을 이루실 이가 바로 당신이라는 뜻에서 참포도나무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이스라엘 민족인 교회가 당신을 통해 그 복과 사명을 이루도록 하시려고 당신에게 붙어있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사명을 이루실 진짜 이스라엘, 참포도나무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지 않는 이는 복과 사명을 누리고 이루지 못 합니다.
3. 농부와 성장
또한 주님은 1절에서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셨습니다.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포도나무를 자라게 하는 농부처럼 하나님은 성도를 자라게 도우십니다. 이 점을 신약 곳곳에서 강조합니다.
(고전 3:7) 그런즉 심는(복음 전하는) 이나 물 주는(가르치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골 2:19) … 온 몸(교회)이 머리(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은혜의)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하나님은 은혜를 넘치도록 주셔서 성도를 자라게 하시는 영혼의 농부이십니다. 영적 성장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해야지, 작정한다고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은총의 열매는 보통 우리 노력에 비례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갑니다. 특별은총의 열매는 우리의 노력 외에 특별한 은총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기도한다고 믿음이 깊어지고, 열심히 성경 읽는다는 더 지혜롭게 되는 게 아닙니다. 바리새인만큼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율법을 암송한 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 하는 인간의 노력은 오히려 교만과 위선을 낳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기도하고 성경읽는 이가 진정한 성장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노력과 수고를 하든 늘 겸손하고 진실하게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신약성경은 성도의 두 가지 열매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거룩한 삶의 열매입니다. 갈 5:22-23을 보십시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 아홉 가지 열매는 모두 성품과 관계, 삶에 맺히는 열매입니다. 두 번째는 전도와 선교의 열매입니다.
(막 4:29) 열매(영혼)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구원) 때가 이르렀음이라.
4. 가지치기
그럼 농부되신 하나님이 이 성품과 선교의 열매를 맺도록 무엇을 하십니까? 바로 가지치기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치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나옵니다.
(요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첫째는 굵은 가지 중 열매맺지 않고 양분만 섭취하는 가지를 잘라내서 양분이 열매맺는 가지에게 가도록 하는 것이요, 둘째는 열매맺는 가지에서 열매가 달린 부분을 제외한 잔가지를 깨끗하게 잘라내서 양분이 열매에게 집중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째 열매없는 가지치기는 교회에 몸을 담고 있는 듯 보이나 아무런 거룩의 열매도, 선교의 열매도 맺지 않는 이를 가리킵니다. 잘라버리신다는 표현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불은 성경에서 늘 심판의 이미지로 쓰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이보다 더 불쌍한 이가 주여, 주여 하고도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 하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는 저주의 음성을 듣는 이입니다. 매주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공부하고 실천할 기회가 주변에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모른 채 살아서 아무 열매를 맺지 못 하는 이들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이들이 단 한 분도 없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열매맺는 가지를 깨끗게 하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성품과 삶을 더 정결하고 성숙하게 다듬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양분을 빼앗는 잔가지를 깨끗히 쳐내서 열매가 더 굵고 달콤하게 만드시는 것처럼 우리 성품과 선교의 열매를 방해하는 온갖 것들을 깨끗히 정리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에 주님이 쳐내기를 원하시는 불필요한 잔가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봉사할 시간, 전도할 시간, 양육받을 시간, 단기선교 갈 시간이 부족하시죠? 혹 유투브 보고 넷플릭스 보고 수다 떨고 골프 치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기 때문은 아닙니까? 십일조할 돈도, 선교헌금할 돈도 늘 부족하시지요? 혹 더 좋은 차를 바꾸느라, 더 큰 집 페이먼트 내느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쓸 돈이 남아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이시나요? 혹시 자기애와 교만과 허영과 아집 때문에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릴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는 것은 아닙니까?
5. 열매맺는 가지
저지난 토요일부터 어제까지 8일간의 카이로스 선교훈련을 큰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주님이 명하신 대위임령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배우고 우리 삶과 사역이 얼마나 주님의 뜻을 벗어나 안락한 곳에서 안주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조력자로 오신 한 선교사님의 딸 이야기가 제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고등학생이던 딸이 어느 날 아버지에게 묻더랍니다. “아빠, 선교사가 되려면 어느 학교에 가야해?” 안쓰러운 마음에 “아빠가 선교사인데 너까지 선교사가 되면 힘들지 않겠니?” 그랬더니 소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아빠는 주님의 재림이 더 늦춰져도 괜찮아?” 대학을 졸업하고 바람대로 캄보디아 프놈펜에 국제기아대책기구 파송선교사로 갔습니다. 현지의 아버지 친구 선교사들도 자기딸 같아서 안스러운 마음에 결혼이라도 시켜서 다시 보내라고 해서 아버지가 강권하여 2년 만에 시카고로 돌아와 무역회사를 다니는데 여기서도 선교사처럼 사는 것입니다. 월급의 십일조가 아닌 십의 삼조 30%를 선교헌금으로 보냅니다. 그럼 쓸 돈이 부족하지 않을까? 그래서 화장품 안 삽니다. 미용실 안 갑니다. 점심은 늘 도시락입니다. 스타벅스 절대 안 갑니다. 왜? 아껴서 선교해야 하니까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오실 주님의 재림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돈과 시간을 써야 하니까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잘라내 버렸습니다.
아마 그렇게까지 유별나게 예수 믿어야 하나,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성도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은 그녀입니까, 우리입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대로 산다면 그녀처럼 살까요, 우리처럼 살까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그녀입니까, 우리입니까?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녀는 삶의 많은 잔가지를 쳐내고 성품과 선교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쳐내셔야 할 수많은 잔가지를 어지럽게 달고 있지는 않습니까?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농부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맡겨드린다면 깨끗하게 가지치기를 해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린 가지가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