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2:28-34/잘 믿고 싶어요
230626 주일설교
잘 믿는 것은?
기독교인치고 주님을 잘 믿고 싶은 바람이 없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잘 믿는 것입니까? 한 번 각자 정의를 내려보십시오. 여러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마 이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첫째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선하게 사는 것, 둘째는 교회를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섬기는 것 그리고 셋째는 경건생활과 선교에 헌신하는 것… 아마 이 세 가지 유형 중 한 가지에만 속해도 칭찬을 받을 터이고 세 가지를 다 갖추면 더더욱 존경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삶은 우리 생각처럼 주님을 잘 믿는 삶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어째서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는 것입니까? 이 세 가지 삶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셨을까요? 그 답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목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 믿는다고 착각하며 잘 못 믿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삶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를 들어보고참으로 잘 믿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십시다.
선하게 사는 것?
첫째 계명을 지키며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계명을 지키라고 명하셨고 선한 삶을 칭찬하고 악한 삶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런데 계명을 다 지키며 선하게 사는 한 부자이자 관원인 청년이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물었을 때 주님은 그의 삶을 칭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의 재물까지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라고 명하셨고 결국 그는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어서 하신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마 19:26) 예수께서 그들(제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문제는 그 부자 청년은 자신의, 계명을 지키는 선한 삶의 노력으로 영생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선한 삶을자신의 의로움으로 여기는 순간 그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삶이 아닙니다. 자신을 믿는 삶입니다. 자신을 믿는 삶의 특징은 자신의 노력, 공로, 업적, 기여, 희생을 생각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살지 못 하는 이를 무시하고 비판합니다. 그런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계명을 잘 지키며 선하게 살아도 그것이 인간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되게 봉사하는 것?
둘째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충성된 일꾼을 칭찬하셨고 충성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눅 15장 두 아들의 비유에서 충성되게 아버지의 집을 섬기던 큰아들이 자신에게 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으셨다고 원망하자 그를 타이르며 이렇게 아버지의 목소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눅 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의 말은 성도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결혼하는 남자에게 가장 큰 선물은 신부가 들고오는 예물이 아니라 신부 자체라는 말과 같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가 주는 선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목적으로 하는 봉사는 아무리 충성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삶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역에 헌신하는 것?
셋째 경건과 선교에 헌신하여 열매를 남기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응답하는 이 삶이야말로 흠잡을 데가 없는 삶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 이들조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들은 왜 선지자요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는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저주를 받습니까? 21절에서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갖 사역을 감당했고 열매도 남긴 듯 보였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이 한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 곧 자신의 바람,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사역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겉으로 아무리 경건하고 능력이 있고 사역이 열매를 남겨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자신의 뜻을 이루는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럼 도대체 그들은 무엇이 문제이기에 선하게 살고 충성스레 봉사하고 선교를 열심히 하면서도 하나님을 참으로 믿지 않는 이가 된것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바로 이런 의문을 가지고 오늘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최고의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이웃사랑이’라고 요약하셨습니다.
(막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실천은 바로 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계명을지키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나올 때 진짜 믿음의 열매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을 행하고 구제하는 것이 이웃을사랑하는 데서 나올 때 진짜 믿음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성공을 사랑하고 즐거움을 사랑하고 욕망을 사랑해서도 얼마든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모든 실천은 믿음의 열매가 아니라 자기사랑 나르시시즘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 마음이 자기사랑과 세상사랑에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마음의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사역과 선행을 해도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이름, 교회 이름 아무리가져다 붙여도 그저 불법을 행하는 악인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곧 마음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서 목숨과 뜻과 힘을 완전히 다른 방향에 완전히 드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이 방향전환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니며, 완전히 다시 태어나듯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물은 교회가 행하는 세례예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움으로 교회공동체를 통해 다시 태어나듯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랑하라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 어떻게 일하십니까? 교회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님은 듣는 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만드십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의 보배피를 흘리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십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기사랑의 족쇄에서 풀려납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과 거룩함과 아름다우심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 때 우리 마음은 자기사랑이 아닌 하나님사랑, 세상사랑이 아닌 이웃사랑을 할 힘을 성령님으로부터 받습니다. 이 때부터 비로소 우리의 믿음의 삶이 시작됩니다. 계명도 지키고 싶고 선을 행하고 싶고 교회를 섬기고 싶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삶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삶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봉사를 많이 하고 사역을 크게 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자녀가 되어 아버지하나님과 사랑하며 살자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느라 지쳐서 예수님 앞에서 말씀만 듣고 있는마리아를 비난하며 원망할 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던 것입니다.
(눅 10:41)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다, 마르다,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눅 10:42) 실상 필요한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천국에 더 가까이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삶은 ‘무언가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님의역사로 깨닫고 거듭난 성도가 자기사랑의 감옥에서 벗어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믿음의 첫걸음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구원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한 서기관을 향해 오늘 본문 34절에서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2:34)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멀지 않도다 곧 가깝다는 말입니다. 가깝다는 말은 아직 거기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곧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구원의 첫걸음이란 의미입니다. 깨닫고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되고 실제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이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다면, 혹은 알고 있었으나 경험하지 못 했다면 우리의 기도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을 더욱 알고 전심으로사랑하게 해주옵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이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 때까지 말씀을 사모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고자, 좋은 직장을 얻고자, 사업을 성공하고 집을 사고자 얼마나 쉬지 않고 일하십니까? 하물며 영생을 얻고자 얼마나 쉬지 않고 기도하여야 할까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