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2 나는 신이다 / 눅 14:25-35

20230702 나는 신이다 / 눅 14:25-35

눅 14:25-35/나는 신이다

230702 주일설교
전능감의 갈구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 the glory는 학창시절의 왕따와 괴롭힘을 소재로 합니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일반명사가 된왕따는 미국에서 Bullying, 일본에서는 이지메라고 합니다. 왕따가 없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왕따와 괴롭힘, 학교폭력 등으로 자살하는학생의 뉴스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이런 일을 뉴스로 듣고 또 실제로 겪으면 도대체 왜 이런 악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이지메의 구조’는 왕따의 원조국이라 할 일본에서 평생 이지메 문제만을 연구하며 이지메학을 창시했다고 평가받는 ‘나이토아사오’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지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실 안에서 학교, 사회의 공식적 질서와 다른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가해자와 이를 묵인하는 동조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질서를 만들고 피해자를 가혹하게 괴롭히는 가해자들은 인터뷰에서 타인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고 통제할 때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이 사라지고 강력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든다고 답했습니다. 저자는 이런 느낌을 전능감이라고 정의하며 가해자는 불안감에 해소하기 위해 전능감을 갈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이 느끼는 전능감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각각 파괴하는 신, 소유하는 신 그리고 장난치는 신입니다. 저자는 이런 전능감을 갈구하는 심리가 싸이코패스나 연쇄살인범에게서도 발견되고 군대에서의 가혹행위, 직장에서의 갑질의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합니다.
자아실현의 바람
그럼 전능감의 갈구는 이런 문제 많은 사람에게서만 발견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철학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니체는 인간이 이제 초인 super human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 초인은 도덕과 의미와 목적을 더 이상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정하는 존재입니다. 곧 인간이 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니체의 주장을 받아들인 영국철학자 토마스 힐 그린은 인생의 목적은 자아실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쓰는 용어인 자아실현은 자신의 잠재력과 욕구를 모두 실현하는 것입니다.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 현대인이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용어 자아실현 욕구 역시 전능감의 갈구와 그 뿌리가같습니다. 그것은 신이 되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야말로 태초부터 인간을 유혹해온 가장 근원적인 욕구이자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쓴 이 표현을 들어보십시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싶다. 하나님에게 의존하여 살지 않고 나도 스스로 있는 존재처럼 살고 싶다. 이것이 태초부터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근원적 욕망입니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에 나오는 이단교주만 신이 되고 싶은 것이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신이 되고 싶습니다. 왕따 가해자나 군대의 악독한 상관, 직장에 갑질하는 상사나 진상고객들이 신이 되고 싶은 것처럼 우리는 가정이나 일터, 심지어 교회에서도 신이 되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은 부모도 사실은 신이 되고 싶습니다. 부하직원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때 화가 나는 상사도 사실은 신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향해원망과 분노를 쏟아놓는 신앙인도 사실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도 깨닫지 못 하지만 사실은 ‘나는 신이다, 나를 경배하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은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은
그러므로 신이 되려는 마음이야말로 현대인이 참된 기독교신앙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진짜 이유입니다. 자아실현과 하나님의 뜻은 충돌합니다. 전능감을 갈구하는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굴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은 이는 자신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의 마음 속에는 크든작든 이 전능감의 갈구가 있습니다. 전능감을 갈구하니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 꿇지 못 합니다. 몸은 교회에 나와있어도 마음은 자아실현을 구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교회에 다니다가 그 대가로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신이 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참신이신 하나님의종이 되기를 결단하고 자아실현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구하는 삶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삶이며 영원히 구원받을 삶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당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에게 제자의 길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눅 14: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예수님이 가시는 길로 함께 간다고 해서 제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수많은 무리일 뿐입니다. 무리는 안타깝지만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곁에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욕망과 계획을 섬기는 이들입니다. 제자는 그들과 다릅니다. 제자라야 예수님과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 제자의 길은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는 자신에게 소중하던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는 곧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다른 버전입니다. 소중한 가족도, 자신의 생명까지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이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둘째는 제자의 길에 부과되는 희생과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죽음으로 사는 길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죽습니까? 신이 되려는 자아가 죽습니다. 자아실현을 바라는 욕망과 계획이 죽습니다. 그럴 때 신이 되려는 헛된 욕망을 버리고 참신이신 하나님의 종으로, 자아를 실현하려는 헛된 바람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죽으면 성도는 부활합니다. 죽어야 성도는 부활합니다. 예수님은마태복음에서 이 진리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죽어도 예수님을 따르면 참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이 진리를 믿고 체험하는 이들은 살아나기 위해 날마다죽습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신이 되려는 자아를 죽이는 길이야말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참으로 사는 길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령으로 거듭난 제자
그러나 이 진리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신이 되려는 마음으로 몸만 교회를 드나듭니다. 그러면죽어서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리라 막연하게 기대합니다.
그런 제자가 아닌 무리에게 예수님은 진지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대해 생각하라고 두 비유를 들어 도전하십니다. 망대를 세우려는 자가 충분한 돈이 있는지 계산도 하지 않고 시작했다가는 결국 공사도 끝내지 못 하고 웃음거리가 되고야 말지 않겠느냐? 전쟁에 나가려는 왕이 충분한 군대가 있는지 헤아려보지도 않고 나갔다가는 전쟁에도 지고 목숨도 잃지 않겠느냐? 망대짓기가 많은 비용이 들고 전쟁이 큰 위험이 따르는 것처럼 예수님을 뒤따르는 것도 자기부인의 비용을 치르고 십자가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 점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단하고 따르라는 부름입니다.
물론 이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길은 인간의 힘으로 갈 수 없습니다.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고 스스로의 힘과 결단으로 노력하는 것은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잡아당겨 구원받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살려면 밖에서 누군가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주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신이 되려는 자아가 죽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새자아로 거듭 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동시에 그 성령님의 역사는 그 부름에 응답하는 이들에게서 역사합니다. 이 진리는 마치 이와 같습니다. 깊은 바다에 빠진 이는 구조대에 의해서만 살아날 수 있지만 구조대의 손길을 뿌리치는 이를 구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중병에 걸린 이는 훌륭한 의사에 의해서만 살아날 수 있지만 치료를 거부하는 이를 살리기는 힘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며 우리가 그 손을 잡기를 바라십니다. 그 응답은 성령님이 신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고치시도록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님은 겸손히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주님이 새 영을 부어주시리라는 약속대로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의 마음을 거듭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 나는 사람들은 경험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늘 여러분은 누구의 사람입니까? 신이 되려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스쳐가는 많은 무리가 아니라예수님을 뒤따르는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