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3 교회의 미래 / 요 1:14-18

20230813 교회의 미래 / 요 1:14-18

요 1:14-18/교회의 미래

230813 창립51주년
1. 도전받는 교회
오늘은 광복 78주년이면서 동시에 우리 교회 창립 51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로서는 51주년을 맞이한 기쁜 날이지만 교회를 둘러싼 현실을 돌아보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미국에 있는 대부분 교회는 교세가 위축일로인데다 팬데믹으로 더욱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학교마다 미달사태를 겪어 통폐합되는 곳이 속출하고 갈수록 사역자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청소년, 청년세대의 감소세가 가팔라 미래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또한 동성애, 세속화, 이단과 사이비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21세기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또 우리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은 룻기를 잠시 접어두고 이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종교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먼저 한 무신론 과학자의 입장을 들어보십시다. <영상>
2. 과학과 종교
그의 말은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과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모두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먼저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많은 무신론자가 과학의 발달로 신의 부재가 증명되었으니 머잖아 종교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사람들은 신은 없으니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해 왔고 20세기 공산국가는 노골적으로 종교말살정책을 펴왔습니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서구선진국에서 교회가 위축된 것은 맞지만 21세기 현재 세계인구의 84%가 여전히 종교인이고 종교인의 인구비율은 오히려 늘고 있습니다. 몇몇 공산국가는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교회가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70억 중 25억 명이 가장 규모가 큰 종교입니다. 왜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과학이 신의 부재를 증명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는 과학으로 증명되지도, 부정되지도 못 합니다. 애초 신과 과학은 서로 다른 카테고리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신은 믿음의 영역에, 과학은 관측의 영역에 속합니다. 신이 관찰되지 않는다고 부재하다는 것은 더듬이로 페로몬을 맡아 움직이는 개미가 인간을 보지못한다고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키위새가 안 보인다고 세상에는 키위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히 과학은 신에 대해 ‘모른다’고 답합니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도구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과학의 발전이 신앙을 무너뜨리지 못 합니다. 
더구나 과학은 신이 존재할 높은 개연성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우주의 질서와 정교함과 법칙을 연구하면 할수록 우연히, 아무 원인도, 목적도 없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습니다. 우주 안에 모든 것은 인과율 곧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따르는데 무신론자들은 오직 우주 자체는 아무 원인도 없이 그저 빅뱅으로 태어났다고만 합니다. 오히려 우주와 그 우주를 지탱하는 놀라운 질서와 법칙과 정교함은 그 존재를 가능케 한 절대적 힘의 존재를 외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지난 2007년 하버드대학매거진은 미국대학교수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가 4분의 1 정도이며 절반 이상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21세기 현재에도 전세계 종교인 성장비율은 무신론자의 그것보다 더 빨리 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3. 종교의 순기능
무신론은 또한 종교에 많은 문제가 있기에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과거 종교가 저지른 잘못, 종교전쟁, 근본주의 종교인에 의한 테러, 현실종교의 부정 혹은 부패를 꼬집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상 속 과학자가 말한 것처럼 종교자체의 가치와 종교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 하는 오류입니다. 2차 대전이 국가간에 벌어졌다고 누구도 국가를 없애자고 하지 않습니다. 독일이 일으켰다고 독일민족과 국가를 없애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가 있다고 가정이란 제도 자체를 없애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탐욕스러운 회사가 있다고 자본주의 자체를 없애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종교만은 문제가 있으니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큰 억지입니까!
21세기에도 종교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부흥하는 이유는 종교의 효용성이 여전히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위안에 더해 사회통합과 질서유지, 전통과 생활방식 계승 등 사회적 순기능은 어떤 사회, 국가기관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역기능이 아무리 커도 순기능보다 크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종교할 것 없이 일정한 삶의 목적과 가치를 제공합니다. 오늘날 큰 인기를 끄는 진화생물학은 생물의 목적이 종의 DNA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퍼뜨려야 합니까? 종이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이 말은 삶의 목적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동어반복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절망과 허무에 빠뜨립니다. 땅을 왜 파세요? 파야하니까요. 이런 노동을 견딜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초 실존주의가 등장한 것입니다. 왜 파는지는 모르니 파는 순간순간 현재를 즐기자. 구덩이가 점점 커지는 것이 보람되지 않나? 땀을 흘리는 이 순간 몸이 상쾌하지 않나? 참으로 땅파기를 즐겁고 보람차게 만드는 것은 꽃씨를 심어 앞마당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기 위함임을 알 때입니다. 아무리 순간순간의 의미와 보람을 찾으려고 애써도 목적있는 삶이 주는 의미와 기쁨을 대신할 수 없기에 종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4.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
자, 종교의 미래는 그렇다치고 기독교와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기독교는 이런 순기능이 가장 크기에 당연히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뉴저지장로교회의 미래와 한인사회의 교회 그리고 자녀들이 다닐 미국땅의 교회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될까요? 여전히 우리가 명실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넘어 진리를 품은 참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키 위해 우리가 명심해야 할 진리입니다. 그것은 참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교회가 품은 진리를 보여줍니다. 14절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분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며 또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는 은혜가 가득하며 또 진리가 가득합니다. 이 가득한 은혜와 진리는 그 분의 몸인 교회 안에도 가득합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님은 당신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하십니까?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은혜와 진리의 진주를 품은 조개와 같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을 복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처럼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은혜와 진리를 충만히 부으십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참교회는 비로소 존재의미를 갖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한 참교회는 위기를 만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당장 한국과 미국의 교회가 위기를 만난 듯 보이지만 진짜 문제는 ‘외부에서 어떤 도전이 있느냐’가 아니라 ‘은혜와 진리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느냐’는 내부의 사명입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는 바로 이것에 의해 좌우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5.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예수님 안에 충만한 진리를 선포하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이 진리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말씀 성경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와 신념은 나름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공동체에 제공합니다. 그 가르침을 따라 힌두교도들은 소에게 절하고 불교인들은 현실을 환상이라고 여기고 무슬림들은 절대복종으로 천국을 바라보고 무신론자들은 목적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진리인 성경은 오늘날 우리 개인의 삶과 역사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제공합니다. 성경은 이 우주의 정체에 대해 선언합니다. 그것은 우연히 목적도, 의미도 없이 출현한 물질과 에너지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창조된 정교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존엄에 대해 선언합니다. 인간이 원숭이나 물고기나 벌레보다 더 존엄한 이유는 운이 좋아 진화의 사다리를 잘 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또한 삶의 목적과 의미,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선언하고 죄와 악과 죽음과 심판에 대해 선포하십니다.
진리로서의 성경을 부정하면 이 진리도 모두 부정됩니다. 그 결과는 흰개미가 속을 다 파먹어버린 집처럼 우리 문명은 허약하여서 작은 위기에도 버티지 못 합니다. 가정과 공동체와 국가와 문명의 뼈대가 흔들리고 우리는 야만의 시대, 정글의 세상으로 내던져질 것입니다.
6. 은혜를 선포하는 교회
또한 우리 교회는 예수님 안에 충만한 은혜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선언합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 사랑은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여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런 사랑과 은혜를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세상에 누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추하다, 더럽다 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대신 희생하여 살려 주십니까? 세상에 누가 여러분을 살리려고 대신 십자가의 치욕과 고통을 감당하며 죽어줍니까? 세상에 어떤 사람, 모임, 공동체가 사심없이 여러분에게 호의를 베풀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진심으로 여러분을 축복해 줍니까? 여러분을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만이 이 모든 구원을 주십니다. 이 넘치는 은혜를 교회는 품고 세상에 흘려보냅니다. 
물론 지상의 교회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교회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고 양과 염소가 섞여 있고 성숙한 이와 미숙한 이가 섞여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교회 할것없이 모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상적인 줄 압니다만 예루살렘 교회의 신학적 갈등과 고린도교회의 온갖 추문, 위대한 최초의 선교사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을 보노라면 지상교회의 문제는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질그릇처럼 보잘것없고 문제많은 교회와 성도를 통하여 은혜와 진리를 세상에 흘려보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이는 부모된 이들이 다 허물많고 미숙하지만 그들을 통해 새로운 세대를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이 본질적 사명을 잃지 않는 한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51주년을 넘어 60주년, 70주년 더 나아가 100주년을 맞이하며 참교회로 쓰임받고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 이것입니다.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에 예수님의 은혜와 진리의 생수를 흘려보내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