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9:1-18/동굴밖으로 부르시는 음성
230917 주일설교
1. 마음의 감기 우울증
존경받는 목회자인 한국의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님은 오랫동안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아왔고 지금도 약을 복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등의 신경증을 앓는 것은 기독교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때 이를 믿음의 부족, 의지력 부족 등으로 여겨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만 이는 신경증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었습니다. 모세, 다윗, 예레미야 등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그리고 마틴 루터와 존 웨슬리, 데이빗 브레이너드 등 교회사에 족적을 남긴 많은 이가 우울증으로 고생했습니다.
우울증을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합니다. 감기를 누구나 걸리는 것처럼 우울감도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감기를 잘못 다루면 폐렴으로 발전하듯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우울감을 잘 다루지 못 하면 우울증으로 심해집니다. 체력이 크게 떨어진 이에게 폐렴은 생명을 위협하듯 마음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우울증은 생명을 위협합니다. 그러므로 우울감이 찾아올 때 이를 잘 다루어 우울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하고, 우울증으로 발전했다면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이로부터 신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우울증은 적절한 의료적 지원과 자기관리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한국인은 무척 취약합니다. 한국인은 OECD국가 중 우울증 유병률 1위입니다. 반면 치료율은 OECD 꼴찌입니다. 미국인은 우울증 치료율이 66%에 달하는데 한국인은 11%밖에 안 됩니다. 여기에는 우울증을 숨기거나 병원을 찾지 않는 한국인의 태도가 큰 몫을 차지합니다.
아마 우울감으로 고생해 보지 않은 분은 한 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일부는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없습니다. 우울감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때로 스트레스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약물치료도 이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수시로 찾아오는 우울감을 다스리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던 엘리야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2. 우울증환자 엘리야
본문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를 보여줍니다. 이세벨의 살해위협을 들은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스라엘 북쪽 이스르엘 평원에서부터 남쪽 경계 네게브 광야까지 도망칩니다.
(왕상 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종과 떨어져 홀로 있으려고 광야로 가서는 자살충동을 느낍니다.
(왕상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서 쓰러져 자고 천사가 거듭 먹을 것을 주자 먹고 또 쓰러져 잡니다. 9절 이하를 보면 호렙산으로 이동한 후에도 굴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합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몸과 마음이 완전히 burn out 탈진상태입니다. 그의 우울증, 자살충동, 탈진과 무기력증은 어디에서 기인합니까? 그의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되어버린 것 때문입니다. 앞선 18장을 보면 그는 여호와의 명령으로 목숨을 걸고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인과 하루종일 대결하고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승리로 그는 아합이 회개하든지 혹은 이스라엘의 영적 기류가 완전히 바뀌리라 기대했습니다. 아마 자신의 3년 반의 도망자생활도 끝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19장 1-2절을 보면 아합은 여전히 두로의 공주이자 바알의 선지자인 아내 이세벨의 손아귀에 잡혀 있고 그녀는 기세등등하여 엘리야를 잡아죽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건 싸움과 승리가 모두 허사가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그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극심한 우울감이 몰려와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역시 인간입니다. 총맞고 멀쩡한 사람이 없듯이 이런 위협과 저주, 무력감 앞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쓰러져버린 엘리야를 하나님은 그럼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끈질기게 엘리야의 곁에서 그를 도와 우울증의 굴을 빠져나와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쓰신 그 방법을 지금부터 살펴봅니다.
3. 잘 먹이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첫 번째로 잘 먹이셔서 체력을 회복케 하십니다. 5-8절을 보면 하나님은 거듭거듭 탈진해 쓰러진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어 구운 떡과 물을 주셔서 먹고 몸을 회복시키십니다.
(왕상 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엘리야가 탈진한 19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천사를 통해 하신 ‘일어나서 먹으라’였습니다. 하나님은 잘 먹이시는 분입니다. 왜일까요? 모든 정신과의사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우리의 정신은 육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약해지면 우울감은 더 쉽게 찾아오고 더 오래 머물고 더 자주 다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고 푹 자고 잘 쉬고 운동을 시작하고 즐거운 놀이를 많이 하라고 강력하게 권합니다. 몸을 강하고 튼튼하게 하면 마음도 덩달아 유쾌하고 여유가 생겨 우울감과 싸울 힘을 얻습니다.
(왕상 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18장에서 850명의 바알제사장을 홀로 물리친 엘리야가 19장에서 이세벨의 협박 한 번에 주저앉아 버린 것은 그의 약해진 체력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3년 반 동안 그를 죽이려는 아합의 추격대를 피해 그릿시냇가 등에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을 먹으며 지냈던 그의 몸은 당연히 무척 약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몸으로 아합 앞에 나타나고 갈멜산 정상까지 걸어올라 하루 종일 그들과 대결하고 비구름이 오기까지 일곱 번을 머리를 무릎에 넣고 간절히 기도하는 등 그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긴장해 있었을까요? 거기에다 이스라엘의 북쪽 이스르엘 평원에서 남쪽 네게브 광야까지 며칠을 도망치느라 또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천사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도 거듭 쓰러져 잘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왕상 19: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그래서 주님은 거듭거듭 천사를 통해 그를 먹고 마시고 자도록 하십니다. 그의 체력이 회복되어야 마음도 회복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지혜로 엘리야는 마침내 체력을 회복하여 네게브광야를 떠나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율법을 받았던 곳 호렙산에 이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왕상 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탈진했던 그가 40일을 광야를 지나 호렙까지 이르게 한 힘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먹고 마시고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서라고 강조합니다. 음식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건강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니까 몸은 아무래도 괜찮다 하면 안 됩니다. 몸을 무시하는 풍조는 그리스철학의 이원론에서 온 것으로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한 때 한국에선 운전이 서툰 여자를 보고,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하지 왜 도로에 나와 민폐를 끼치느냐고 조롱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무식한 말인지 모릅니다. 솥뚜껑 운전이야말로 인류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까? 밥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맛있는 밥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습니까? 자녀를 맛있게 배불리 먹이는 것만큼 부모에게 큰 기쁨이 있습니까? 가정의 식사를 담당하는 엄마들을 늘 존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배불리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4. 동굴 밖으로 불러내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두 번째로 어두운 굴에 갇힌 이를 빛으로 불러내십니다. 천사를 보내어 탈진한 엘리야를 잘 먹이고 회복시키신 하나님은 40일이나 걸려 그를 네게브광야에서 호렙산 곧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아마 모세처럼 엘리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려는 것이었을텐데 그는 그만 굴에 들어가 숨어버립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몸은 회복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어두움 곧 우울함을 벗어나지 못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굴 밖으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왕상 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너는 이 굴에 숨어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도 엘리야가 나오려 하지 않자 11절에서 다시 굴밖으로 나오라 하신 후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로 영광을 보이신 후 세미한 음성으로 무언가를 말씀하십니다.
(왕상 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결국 엘리야는 무어라 하시는지 그 음성을 들으려고 굴밖으로 나올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음성은 다시한번 엘리야에게 굴에 숨어있지 말고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상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엘리야는 굴 밖으로 나와 그가 감당할 사명을 받습니다. 곧 그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가 굴밖으로 나온 것은 곧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두운 굴밖으로 불러내시기 위해 거듭거듭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까? 그를 우울의 굴속으로 밀어넣은 것이 이세벨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왕상 19:2) 이세벨이 …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한지라.
세상은 이세벨의 음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널 죽여버릴거야, 넌 실패할거야, 넌 쓰레기야, 넌 뭘 해도 안 돼, 아무도 너게 관심없어… 이세벨의 음성은 우리를 더 깊은 굴속으로 밀어넣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밝은 굴밖으로 불러냅니다. 너는 굴에 숨어있을 사람이 아니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돌보고 돕는다, 내가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음성을 거부하고 거듭거듭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울리는 소리를 한 번 노트에 적어보십시오. 이세벨의 음성이 얼마나 많이 울려퍼지는지 모릅니다. 매일매일 그 음성을 듣다보면 가랑비에 옷젖듯이 자신도 모르게 우울과 짜증과 침체와 불만의 굴속으로 마음이 계속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말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 우리를 빛으로 부르십니다. 그 음성이 우리를 빛으로 인도합니다.
5. 공동체로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세 번째로 우리를 거룩한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굴밖으로 부를 때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엘리야가 거듭 쏟아놓은 원망이 이것입니다. 10절과 14절은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습니다.
(왕상 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이가 자신밖에 없다고 거듭 탄식합니다. 고난받고 희생하는 이가 혼자라는 생각은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18절입니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세상에 의인은 없고 악인만 가득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무려 7천 명이나 되는 공동체가 엘리야 못지않은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 공동체를 소개하셨습니다.
첩첩산중을 지나다가 한밤중에 길을 잃었습니다. 혼자라면 덜컥 겁이 납니다.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발이라도 헛디뎌 골짜기에 구르면, 추운 밤에 동사라도 하면, 이대로 조난당해 식량이 떨어지면… 둘이라면 조금 안심이 됩니다. 서로 지혜를 모으면 구조받을 때까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20명이라면? 걱정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 방법 좀 찾아봐, 리더를 뽑아서 함께 빠져나가자. 200명이라면? 아, 그냥 집 지어, 우물 파고, 마을 짓고 살자. 공동체에는 힘이 있습니다. 걱정할 게 없습니다.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 건강한 공동체만큼 힘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비관하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시도를 하고 극적으로 생명을 건진 경험으로 많은 이들을 돕는 한양대 상담학 박상미 교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우울한 마음도 습관입니다’라는 책에서 오랫동안 교도소사역을 하며 발견한 교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흔히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흉악한 범죄자조차 두 가지 조건만 맞으면 변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만나고 둘째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녀의 말을 다시 정리하자면 하나님을 만난 이가 공동체를 만나면 그는 변합니다. 치유됩니다. 살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건강하고 복된 공동체, 교회를 우리에게 선물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홀로 이 거친 세상을 낙심하고 좌절하고 쓰러질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 명의 공동체 교회를 선물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로 나오면 삽니다. 교회는 치유합니다. 교회는 구원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를 배불리 먹이십니다. 굴밖으로 불러내십니다.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그 하나님의 세미하고 자비롭고 능력있는 음성을 듣고 빛으로 나오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