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4 목자들의 노래 / 눅 2:1-20

20231224 목자들의 노래 / 눅 2:1-20

눅 2:1-20/목자들의 노래

231224 성탄주일
1. 왕이 오신 곳
오늘은 기쁜 성탄절입니다. 서로에게 축복의 인사를 해주십시오. 주님이 당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온 세상의 구주가 오셨다는 성탄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구주께서 어디에 오셨습니까? 
(눅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만왕의 왕께서 이 땅에 오시되 구유에 오셨습니다. 왕궁에나 부자집에나 화려한 곳이 아닌 서민들의 여관에서도 누울 곳이 없어 가축들과 함께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1세기 유대지방의 전형적인 서민가옥은 2층 구조입니다. 2층이 사람이 자는 곳이고, 1층은 부엌, 창고, 작업실, 가축우리를 겸했습니다. 2층의 누울 자리가 없어서 요셉가족은 1층의 가축들과 함께 누웠다는 뜻입니다. 
온 세상의 왕이요, 온 우주의 구주의 하나님의 아들이 왜 이토록 비천한 곳으로 오셨을까요? 정말 여관에 누울 자리가 없어서입니까?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바다를 갈라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마리아를 잉태케 하신 하나님이 아들의 누울 왕궁을 찾지 못 하여, 변변한 여관의 방 하나를 못 구할 힘이 없어 구유에 눕도록 내버려두신 것일까요? 말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왜 구유에 누우신 것일까요? 일부러 구유를 택하신 겁니다. 가장 비천한 자리,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리를 일부러 고르신 겁니다. 왜요?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 왕을 찾아올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의 정체를 8-9절이 알려줍니다. 
2. 왕이 부르신 이
(눅 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그들은 바로 목자들입니다. 양들이 주거지 주변의 풀을 다 뜯으면 먼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야 하고 매번 마을의 우리 로 돌아오지 못 하기에 밤이면 들판의 동굴이나 임시로 만든 우리에 양들을 몰아넣고 목자들이 번갈아 깨서 지키기를 반복하며 며칠 혹은 몇 주를 다닙니다. 이렇게 몰고 다니는 많은 양떼를 소유한 부자가 직접 들판에 나가 추위와 들짐승과 싸우며 불편한 잠자리에서 고생을 하겠습니까? 목자들은 한 철 양떼를 치면 주인에게 그 대가로 한 마리 혹은 두 마리를 삯으로 받곤 했습니다. 당연히 목자는 가난하고 육체노동으로밖에는 생계를 이어갈 재간이 없는 이들이고 가장 낮은 계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여 왕의 탄생을 알리셨습니다. 놀라고 감격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찾으러 갔을 때 만약 왕궁이었다면 그들이 근처에나 갈 수 있었겠습니까? 부자들의 안방이었다면 그들이 왕에게 경배하겠다고 말이나 꺼낼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 마리아가 귀부인이었다면 목자들이 전하는 말을 들으려고나 했겠습니까? 
놀랍게도 왕이 오셨는데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가축의 구유에 오셨고 그 어머니도 갈릴리에서 온 너무나 평범한 여자였기에 목자들은 두려움도, 어색함도, 어려움도 없이 다가가 왕께 경배하고 천사들의 말을 전하고 기쁨으로 가득차 찬양하며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3. 왕이 주시는 기쁨
바로 이것이 왕이 오신 소식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입니다. 고대의 모든 왕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자칫 노여움을 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백성은 왕이 행차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혹 마주쳤다가 무슨 변이나 당할까 두려워 도망다녔습니다. 하다못해 대명천지 21세기에도 회식하면 사장님 옆자리에 불편해서 안 앉으려고 하지 않나요? 심지어 목사 옆자리에 안 앉으려는 교인들도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장은 자신의 안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니 혹 실수라도 해서 밉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지요? 생사여탈권을 지닌 왕은 어떠했을까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거나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리목숨처럼 사람을 죽이기도 했던 고대왕들이 온다는 소식이 어떻게 백성에게 기쁨이었을까요?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화려한 왕궁에, 왕자로 오셨다면 이 목자같은 낮은 계층의 사람은 근처에도 못 갔을 것입니다. 구세주시라는데 그 앞에 고개도 들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아들, 은혜로우신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구유에,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의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목자들의 영접을 받으며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말구유처럼 악취가 나는 죄인이라도, 아무리 목자들처럼 보잘것없는 우리라도 감히 왕께 가까이 나아가 경배하고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주님은 그러나 더 낮은 십자가에까지 내려가셔서 피흘리심으로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리,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나님나라에 올려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왕이 오셨다는 소식이 기쁜 이유입니다. 이 성탄의 소식이 온 세상에 모든 마음이 가난하고 신분마저 비천하고 목마르고 굶주린 죄인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입니다. 목자들은 그 기쁨으로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눅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이 성탄절에 여러분도 큰 기쁨과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은혜를 누리시길 축복합니다.